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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레시피 - 맛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이야기가 된다!
나카가와 히데코 지음 / 북스레브쿠헨 / 2025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연희동 요리 선생님으로 친숙한 요리 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의 『아버지의 레시피』. 한 셰프의 삶, 한 가족의 역사, 그리고 한 시대의 문화적 전환이 모두 녹아 있는 식탁 아카이브라 할 만합니다.
저자의 아버지 나카가와 다모쓰는 도쿄제국호텔에서 프렌치 요리를 다루던 셰프였고, 쇼와와 헤이세이를 가로지른 요리 인생을 살았습니다. 히데코는 아버지의 빛바랜 레시피 노트를 따라가며 스무 편의 에세이와 서른일곱 편의 레시피로 아버지의 삶을 재현합니다.

맛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이야기가 된다는 부제처럼, 요리는 단순히 음식이 아닌 이야기의 매개체가 됩니다. 레시피를 빌미로 한 사람의 일생을 복원해 내는 감동적인 프로젝트이자 세대를 건너뛰며 전해지는 맛의 DNA를 추적한 흥미진진한 요리 에세이입니다.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옥수수 크림수프의 기억입니다. “내가 장성해 해외를 돌아다니며 살게 되자 아버지는 옥수수 크림수프 레시피를 적어 항공우편으로 보내주었다… 내 아이들은 아버지의 옥수수 크림수프를 이유식으로 먹었고, 그 맛은 대를 이어 전해졌다”라고 회상합니다.
옥수수 크림수프는 아버지가 부치는 안부 편지의 다른 이름이었던 겁니다. 종이 위의 레시피는 국경을 건너고 세대를 이어 가족의 정서적 유대를 보존하는 도구가 됩니다.
아버지의 요리 인생은 오믈렛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도쿄제국호텔의 주방에서 외국인 관광객의 아침 식탁에 맞추기 위해 끝없는 달걀 요리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요리란 손맛의 영역을 넘어 집념과 수련의 산물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레시피를 따라 하며 무심히 완성하는 한 접시에도 사실은 수십 년의 땀과 연구가 켜켜이 쌓여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은 셰프의 삶에서는 종종 부재의 시간으로 기록됩니다. 부재 속에서도 직업적 헌신이 어떻게 가족의 기억 속 상징으로 전환되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가슴을 두드립니다. 시간이 흘러야만 깨달을 수 있는 사랑의 형태를 완벽하게 포착합니다. 아이에게는 아버지의 부재가 서운함이었지만, 성인이 된 후에야 그 부재 속에 담긴 희생과 사랑의 무게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기술 전수 장면이 등장할 때면 미소가 지어집니다. “소고기는 말이지, 굽기 두 시간 전에 냉장고에서 꺼내둬야 한단다”라며 아버지가 딸에게 전하는 말은 생애의 지혜와도 같습니다. 프라이팬의 열기 위에서 전수되는 것은 기술이지만, 그것을 감싸는 것은 부성애입니다. 히데코가 결국 아버지의 길을 선택한 것도 이 순간들 덕분일 겁니다.

늘 대단한 요리만 등장하는 건 아닙니다. 평범한 간식마저도 따뜻한 이야기가 됩니다. “아빠가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베를리너 튀겨주신대!”라는 어머니의 말은 어린 딸의 하루를 환희로 채웁니다. 여기서 요리는 미슐랭급의 복잡한 기술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부지런히 튀겨내는 한 조각의 빵에서 더 큰 의미를 얻습니다.
“지칠 때면 아버지와 함께 굽던 향긋한 애플파이 냄새를 떠올리며 힘을 내본다”라고 말하는 딸. 요리는 삶의 복원력을 일깨우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기본기부터 실패하기 쉬운 포인트, 가정에서 응용하는 비법까지 아낌없이 공개한 서른일곱 편의 레시피가 반갑습니다. 옥수수 크림수프, 햄버그스테이크, 로스트 치킨, 애플파이 등 아버지와 딸의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요리들입니다. 재현의 차원을 넘어, 오늘의 부엌에서 재해석된 레시피입니다.
글과 사진이 함께 빚어낸 『아버지의 레시피』. 주방의 구석구석, 재료가 익어가는 순간, 오래된 노트의 질감까지 고스란히 포착한 칠십여 컷의 사진은 맛을 상상하게 합니다. 요리를 삶의 언어로 이해하는 시간, 세대를 잇는 전승의 힘을 체감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