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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는 수요일
곽윤숙 지음, 릴리아 그림 / 샘터사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오늘 어때?”라는 질문에 “별일 없어”라고 답하는 건 대화의 관성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달리해 보면, 그 짧은 대답 속에는 하루를 무사히 건너온 안도의 숨결이 숨어 있습니다.
크고 작은 사건이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무탈하게 하루를 마쳤다는 사실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값진 결과지요. 월요일의 무거움도, 금요일의 설렘도 없는 그저 평범한 수요일. 『별일 없는 수요일』은 무탈함의 의미를 아이의 눈을 통해 드러냅니다.
곽윤숙 작가의 글과 릴리아 작가의 그림으로 완성된 이 그림책은 어린이의 짧은 버스 여정을 통해 공동체와 배려의 힘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무탈하게 하루를 살아간다는 사실 뒤에 숨어 있는 수많은 배려와 따뜻한 손길을 발견하게 만듭니다.

열 살 소녀 가영이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 잠깐 졸다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게 됩니다. 당황한 순간, 가영이는 자신만의 주문을 외웁니다. “괜찮아 하나, 나는 정가영이니까. 괜찮아 두울, 열 살이나 먹었다고…” 이렇게 자신을 다독이는 장면이 사랑스럽습니다.
자기암시를 넘어, 아이가 지금까지 주변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지지를 재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친구, 고양이, 기도해 주는 할머니까지 가영이가 두려움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되어줍니다. 우리 아이는 위기의 순간에 어떤 마음의 주문을 가지고 있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그림책 속 버스는 사회의 축소판으로 기능합니다. 버스에는 다양한 연령, 배경,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끼리 한정된 공간을 공유하며 서로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가영이가 졸다 놓친 정류장 사건은 이 공간 속에서 여러 인물들의 은근한 도움을 이끌어냅니다. 혹시라도 아이가 넘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눈길을 보내는 어른, 길을 물을 때 차분히 대답해 주는 승객, 눈에 띄지는 않지만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배려의 분위기. 이런 요소들이 모여 결국 가영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별일 없는 하루'를 만들어냅니다.

공동체적 연대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실 일상의 안전은 익명의 타인들의 배려가 얽히고설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교통신호를 지켜주는 운전자, 길을 묻는 이에게 답해주는 행인, 대중교통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누군가... 이 모든 순간이 모여 우리의 하루가 '별일 없는 하루'로 완성되는 겁니다.
아이의 눈을 통해 비친 공동체적 연대는 아주 사소한 배려의 축적에서 비롯됩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나도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주는 눈길이 될 수 있다는 책임감을 일깨워 줍니다. 이제 “별일 없어”는 더 이상 습관적 대답이 아니라, 세상과 서로에게 보내는 감사와 안도의 고백이 됩니다.
평범한 하루의 특별함을 재발견하게 하는 『별일 없는 수요일』. 가영이는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요? 아주 깜짝 놀랄 만한 반전도 기다리고 있으니 결말 스포 접하지 않고 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