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 - 의학의 새로운 도약을 불러온 질병 관점의 대전환과 인류의 미래 묻고 답하다 7
전주홍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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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전주홍 교수가 해부하는 5천 년 의학 혁명의 비밀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 전작 《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가 생명이라는 근본 질문에 답했다면, 이번 책은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다섯 가지 장대한 흐름 속에 담아냅니다.


질병 치료 기술의 발전사를 나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 있는 세계관과 지식 체계의 변화를 꼼꼼하게 추적합니다. 이 책은 의학의 연대기이자 인류 지성사의 미시사입니다.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는 의학사를 관통하는 다섯 가지 핵심 키워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의 노여움, 자연적 원인, 특정 장소, 분자, 그리고 정보. 각각의 패러다임은 누적된 지식과 해석의 지층 위에서 발생한 대전환이었습니다.





첫 번째 관점 '신의 노여움으로서의 질병'에서는 오랫동안 신의 분노, 조상의 업보로 해석되어온 질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과학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미신적 치료에 의존하는 모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과학적 설명이 아무리 정교해도 인간의 불안과 고통은 종교적, 정서적 서사 속에서 여전히 위안을 찾습니다. 질병은 여전히 인간의 의미 체계 속에서 다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관점 '자연적 원인에 따른 질병'에서는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이 등장합니다. 질병을 뜻하는 영어 단어 disease에 체액의 균형이 깨진 상태를 질병으로 본 관점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disease는 균형의 뜻을 담은 ease와 부정 접두어 dis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병을 균형의 파괴로 이해한 오래된 관점은 지금도 면역 균형이나 호르몬 불균형 같은 현대 의학의 용어 속에서 살아 있습니다.


세 번째 관점인 '특정 장소에 놓이게 된 질병'에서는 해부학의 탄생 배경이 펼쳐집니다. 르네상스는 인체 내부를 들여다보려는 열망의 시대였습니다. 다빈치의 해부학 드로잉은 근대 의학의 서막을 연 기록물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인체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심미적 욕망이 오히려 해부학을 발전시켰다는 점을 짚어줍니다.


네 번째 관점인 '분자가 좌우하는 질병'에서는 측정과 실험이 의학에 가져온 혁신을 다룹니다. 17세기 이후 측정과 실험은 의학의 표준 언어가 되었습니다. 파울 에를리히의 등장은 의학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힙니다. 합성 염료를 이용해 세포를 선택적으로 염색하는 과정에서, 화학 물질이 특정 세포에만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에를리히는 이 과정을 비유하여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사례는 오늘날 표적항암제와 면역치료제까지 이어지는 의학적 상상력의 뿌리라 할 수 있습니다. 에를리히의 발견은 인류가 질병을 분자 단위에서 정밀하게 겨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제시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마지막 관점인 '정보가 말해주는 질병'에서는 현재 진행형인 의학혁명을 다룹니다. 현대 의학의 최전선은 정보입니다. 유전자를 암호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은 유전자가 생명과 질병현상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는 개인 맞춤형 의료, 나아가 정밀의학 시대를 열었습니다.


전주홍 교수는 의학을 에피스테메(이론적 지식)와 테크네(실천적 기술)를 분리해서 보지 않고 고도화된 융합의 형태로 바라봅니다. 그렇기에 브뤼노 라투르의 블랙박스 개념도 놓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 의사가 내린 진단은 정확할 수 있지만, 그 결정이 어떤 맥락에서 도출되었는지 우리는 알기 어렵습니다. 이 불투명성은 곧 윤리적, 사회적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환자의 불안을 달래고 고통에 공감하는 일은 결국 인간 의사의 몫입니다.


의학의 역사는 곧 인간이 스스로의 고통을 해석해온 이야기입니다. 전문 용어 가득한 의학사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저자의 서술 방식은 일반 독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의생명과학 지망생이라면 필독서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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