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말 2 - 나를 떠난 글이 당신 안에서 거듭나기를 이어령의 말 2
이어령 지음 / 세계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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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언어와 사유를 새롭게 열어젖힌 지성인 이어령(1934~2022) 저자. 평론가, 수필가, 소설가, 행정가로서 한국 현대 문화의 결정적 순간마다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이어령의 말 2』는 생전에 남긴 수많은 글과 강연 가운데 말의 결정체라 불러도 좋을 문장들을 모은 유작집입니다. 나를 떠난 글이 당신 안에서 거듭나기를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인용집 성격을 넘어 저마다의 내면에서 새로운 의미로 다시 살아나는 텍스트입니다.


『이어령의 말 2』에서는 감성, 지성, 자연, 문화, 물질, 정신, 일상, 상상, 그리고 생명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의 본질적 차원을 아홉 갈래로 펼쳐냅니다. 마지막까지 붙잡았던 주제, 생명을 향한 통찰로 이어집니다.





이어령 저자는 감각과 정서가 지성보다 앞서 인간됨의 바탕을 이룬다고 보았습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느낀다” (p.95)는 구절은 일상의 사소한 감각이 곧 생의 충동과 맞닿아 있음을 일깨웁니다. 사치로 치부될 수 있는 감성을 오히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원으로 제시합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 정보의 과잉보다, 나뭇잎 흔들림 한 장면에서 더 강렬한 생의 의지를 발견하는 태도야말로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자각입니다.


그는 지성을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닌 스스로 사유하는 힘으로 이해했습니다. “네 머리로 생각하라. 네 생각을 놓아두고, 왜 남의 생각을 빌리려 하는가” (p.38)라고 말이죠. AI가 모든 정답을 제시하는 시대일수록, 오히려 자기만의 의문과 사유가 희귀한 자산이 됩니다. 이어령의 지성 개념은 단순히 지식인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세계와 자신을 다시 쓰는 존재입니다.


문화에 대해 세대 간 긴장을 맷돌의 비유로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맷돌은 한 짝만으로는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 … 기성세대는 고정된 맷돌짝이요, 젊은 세대는 또 한 짝이다” (p.150)라고 말입니다. 문화는 고정과 변화, 전통과 혁신이 맞부딪히는 마찰 속에서 가루처럼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든다는 것입니다. 세대 갈등을 파괴적 충돌로만 이해하는 시각을 넘어서, 창조적 긴장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저자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오히려 인간이 빈곤해지는 역설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노동 이후의 시간을 주목했습니다. “현대인의 위기는 일할 때가 아니라 일을 멈출 때 생긴다” (p.169)라며 여가의 공허함, 자아와 마주하는 두려움이 오늘날의 병리라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물질의 축적이 곧 삶의 충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통찰입니다.





일상은 반복과 권태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자리입니다. 퇴근 이후의 시간을 분석하며 유흥에 도피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일상을 도피의 장이 아니라 성찰의 공간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정신은 물질의 대척점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정하는 나침반입니다. 그는 인간이 결국 자기 생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정신의 빛을 필요로 한다고 보았습니다. 삶의 궁극적 의미를 묻는 철학적 태도에 가깝습니다. 그가 강조한 정신은 고립된 사유가 아니라 타자와의 연대 속에서 드러나는 생명의 힘이기도 합니다.


상상은 이어령 사유의 중요한 키워드였습니다. 상상을 단순한 공상이 아닌, 현실을 넘어서는 창조적 비상으로 정의합니다. “창조라는 건 외롭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항상 혼자여야 하는 겁니다” (p.284)라며 상상은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독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잉태하게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정점은 생명입니다. 그는 생명을 목적 그 자체로 여겼습니다. “인간의 한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탄생과 사망이다” (p.311)라며 탄생을 기억하지 못하고 죽음을 말할 수 없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짚어줍니다. 이어령 저자가 강조한 생명은 인간의 존엄과 연결, 그리고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습니다. 기후 위기, 전쟁, 인공지능의 불안 속에서 생명은 생물학적 개념을 넘어선 절대적 가치로 다시 소환됩니다.


생전에 “제 말을 잊어주십시오”라고 당부했던 이어령. 자신의 언어를 무화하라는 부탁이 아니라, 저마다에게 새롭게 거듭난 의미로 살려내라는 요청입니다. 『이어령의 말 2』는 자기만의 언어와 사유로 다시 짓는 공유지 같은 어록집입니다. 죽은 자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다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텍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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