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나를 깨우다 - 멈춘 사유의 감각을 되살리는 51가지 철학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욱 편역 / 레디투다이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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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독일의 대표 철학자이자 서양철학사의 기이한 별자리입니다. 동시대 철학이 법과 윤리, 종교의 언어에 갇혀 있을 때, 고통이라는 실존의 조건을 정면으로 응시했습니다. 그 눈빛은 차갑지만, 그 차가움 속에 담긴 사유의 온도는 뜨겁습니다.


<쇼펜하우어, 나를 깨우다>는 노년에 남긴 《여록과 보유》를 비롯해 그의 핵심 사상을 51개의 짧은 글로 김욱 번역가가 엮은 책입니다. 인문 분야 최장기 베스트셀러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의 후속작입니다.


니체가 흠모하고, 프로이트가 몰두하며, 톨스토이가 경외했던 그 쇼펜하우어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쇼펜하우어의 명언들은 자기위로의 습관을 흔들어 깨웁니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는 달콤한 위로의 말이 더 이상이 힘이 되지 않을 때 쇼펜하우어의 이야기는 오히려 묘한 해방감을 안겨줍니다.






태어남은 고통의 시작이며 삶은 그것을 연기하는 과정일 뿐이라며 현실을 정면으로 직시하게 합니다. 생각하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형벌이라는 겁니다. 삶이란 설계도 없이 이루어지는 건축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그저 매일 눈앞의 벽돌 한 장을 묵묵히 쌓아야 합니다.


전체 설계도를 본 적도 없고, 완성된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어 불안하고 결과가 불투명해 허탈하지만, 실은 그 불확실성을 견디며 꾸역꾸역 쌓아가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본질이라는 통찰입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오늘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위대한 삶이란,

전체를 꿰뚫는 완성된 사유가 아닌

한 조각의 진실을 버티며

그 자리에 머무르는 끈기를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p33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가차 없습니다. 인간은 타인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다만 자신의 내면에서 불편함을 덜어내기 위해 감정을 유예하는 법을 배웠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타인 역시 나를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행위의 이면에 포함된, 억제해야만 하는 조건. 즉 윤리를 흉내 내는 존재로서의 인간임을 일깨워 줍니다. 그러니 불필요한 기대는 내려놓고, 스스로를 단단하게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의 고독의 의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변화에서 해방되는 법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특히 외부 환경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사유와 배움, 탐구, 수련 등 지적인 생활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괴테가 전쟁 중에도 색채학 연구를 이어갔다는 일화는 몰입과 지속이야말로 정신의 자유를 지켜주는 힘임을 보여줍니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현실주의에 가깝습니다. 삶의 본질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본 자는 선택의 순간마다 쾌락보다는 고통을 택할 것이라며 고통을 회피하려 드는 현대 문화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합니다.


특히 그의 의지 개념은 심리학의 무의식 이론과 닮았습니다.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이성이 아니라 맹목적 의지라는 그의 통찰은 경제적 의사결정을 할 때 합리적 계산보다 인지 편향, 감정, 습관에 크게 좌우된다는 행동경제학과도 사상적 유사성이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을 나만의 강을 만드는 작업에 비유합니다. 남이 흘려보내는 물길을 좇아가면 결국 자신의 강은 생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남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사유를 만들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진정한 사유는 고요의 틈에서 태어난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자극을 받는 환경에서는 깊은 사유가 불가능하다는 그의 지적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SNS 시대에 더욱 예언적으로 들립니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을 고통의 제거가 아닌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도구로 정의합니다. 철학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지만 견딜 수 있는 시야를 선물합니다. <쇼펜하우어, 나를 깨우다>는 삶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되 그 의미를 철학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시각을 선사합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를 배울 수 있는 <쇼펜하우어, 나를 깨우다>.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이 인생을 구한다는 현실주의적 각성론자, 쇼펜하우어의 사유법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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