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 - 메이지 유신부터 패전까지, 근대 일본의 도약과 몰락을 돌아보다
박훈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자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에게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로 남아있습니다. 독도 문제, 과거사 갈등, 역사 인식의 충돌까지.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훈 교수의 <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는 감정보다 성찰을, 규탄보다 통찰을 택한 역사 읽기를 통해 근대 일본사를 재조명합니다.


메이지 유신부터 태평양전쟁의 패전, 일본이 어떻게 근대국가로의 전환을 이뤘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망합니다. 일본사의 재서술을 넘어 '한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사라는 제목처럼 저자는 일본을 통해 한국을 보고, 과거의 선택들이 오늘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질문합니다.





1부는 페리 제독의 흑선이 일본 앞바다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메이지 유신이라는 근대 일본의 핵심 변곡점까지의 과정을 다룹니다. 이 시기의 일본은 외세의 압박 앞에서 수세적으로 반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국가 대전환의 기회로 삼아 능동적으로 체제를 전환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도약이 동아시아에 치명적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 선택의 구조와 동력을 냉정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흥미로운 장면은 페리가 떠난 후 아베 마사히로의 개혁입니다. 바다에서 물고기나 건져 올려서는 나라의 명줄까지 내놓아야 하는 세상이 됐다는 걸 간파한 그는 나가사키에 해군학교를 세웁니다. 해양력의 중요성을 얼마나 빨리 깨달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근대화의 첫걸음이 단순한 제도 수입이 아니라 위기의 구조를 읽는 정치 감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짚어줍니다.


요시다 쇼인과 사카모토 료마 같은 인물들의 대비 또한 흥미롭습니다. 저자는 요시다 쇼인이 메이지 유신의 과격한 이상주의, 광신적 민족주의를 대표한다면, 사카모토 료마는 명민한 현실주의와 평화주의를 상징한다고 평합니다.


일본 내에서도 사상의 스펙트럼이 존재했으며 메이지 유신이 단일한 민족주의로만 이뤄지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저자는 아베 신조가 요시다 쇼인을, 손정의가 사카모토 료마를 좋아한다는 흥미로운 비교를 통해 현재 일본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두 가지 경향을 보여줍니다.





2부는 근대의 초입에서 조선과 일본이 어떤 선택을 했고,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비교 분석합니다. 대원군의 개혁과 메이지 유신, 김옥균과 이토 히로부미, 강화도조약과 일본의 통상조약의 차이를 통해 두 나라가 어떻게 다른 길을 걸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시기 일본은 누구에게 권력이 가든 시스템의 방향이 분명한 반면, 조선은 리더십의 진공지대에 빠졌다는 통찰은 역사라는 것이 인물보다 구조의 산물임을 알려줍니다.


강화도조약과 김옥균의 망명, 갑신정변 등을 통해 조선이 근대를 어떻게 오해했는지를 조명하면서 일본의 도약이 단지 군사력의 산물이 아닌 문화적 상상력과 정치의지의 결과였음을 설명합니다.


특히 정한론의 등장을 자폐적 자기인식에서 비롯된 몽상의 정치화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은 현재 일본 사회의 일부 극우 세력들이 보이는 행태와도 연결됩니다. 콤플렉스가 어떻게 공격적 대외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역사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3부에서는 제국주의로의 질주, 침략 전쟁, 패망 그리고 전후 복구 과정까지를 다룹니다. 조선을 비롯한 식민지에 대한 일본 내부의 인식과 전략적 접근을 짚어줍니다.


조선 내부에도 근대적 요소가 축적되고 있었다며, 일본은 이러한 조선을 단지 식민지로만 본 것이 아니라 정치적, 상징적 도전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겁니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일본은 점점 물리적 힘만으로는 지배를 지속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일본은 흩어진 모래알 같은 중국인들에게 ‘내셔널리즘’을 선물했다"라는 표현은 침략이 역설적으로 상대방의 민족주의를 각성시키는 기제로 작동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전후 사과 문제는 한일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지점입니다. 저자는 반복된 사과에도 한국인이 여전히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망언과 엘리트 정치인들의 태도에서 찾습니다.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한 것, 식민지시대에 일본은 좋은 일도 많이 했다, 전쟁터의 위안부는 필요한 제도였다 등의 발언이 공식 사과를 무력화시키는 정치적 모순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는 분노를 자극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유하게 만듭니다. 규탄보다 분석, 도덕보다 전략, 단절보다 맥락. 역사란 과거의 도덕적 심판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인식의 구조임을 이야기합니다.


메이지 유신을 가능케 한 일본 사회의 토양과 그것이 어떻게 동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오늘날의 외교와 역사 갈등까지 이어지는 타임라인을 박훈 교수는 그려냅니다. 방대한 자료와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