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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파리누쉬 사니이 지음, 이미선 옮김 / 북레시피 / 2025년 7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파리누쉬 사니이의 세 번째 장편소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은 이란에서 금서로 지정된 작품입니다. 현대사의 균열 속에서 산산조각 난 감정과 정체성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구조물이 어떻게 해체되고 복원되는지를 보여주는 문학적 시도입니다.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의 이력이 작품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국가와 제도의 폭력으로 인해 분열된 한 가족의 열흘간 재회를 통해 집단 트라우마의 치유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이 소설은 장소의 이동 없이 오직 이란 접경 국가의 바닷가 도시라는 공간에서 진행됩니다. 모든 등장인물이 열흘 동안 한 공간에서 머무는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품어온 오해와 분노, 상실과 그리움을 날 것으로 드러냅니다.

첫째 날부터 열째 날까지 열 개의 고백, 열 개의 서사, 그리고 하나의 가족 이야기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가족 구성원 각자가 하루씩 자신만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형식입니다. 열흘간 가족이 한 장소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구성은 심리적 몰입을 유도합니다.
마치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돌아가며 독백을 쏟아내는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작가의 의도적 연극적 구성은 인물들의 감정을 더욱 날것으로 전달합니다. 심리학적 서술이 아닌 대사 중심의 구조로 직접 자신의 상처를 말하게 함으로써 읽는 이 또한 그 고통에 직면하게 만듭니다.
도키의 내레이션은 이야기들의 중심축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도키의 정체성 혼란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 이 가족 전체가 겪는 분열의 집약체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의 사회적 격변기입니다. 작가는 가족 해체의 원인을 개인주의나 산업화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이슬람 혁명이 개인의 삶, 특히 가족의 구조를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이란에 남은 사람들은 히잡 착용, 도덕 경찰의 감시, 전쟁의 참화 속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떠난 이들은 정체성 혼란, 문화 충돌,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겪습니다. 각자의 고통은 다르지만 고통의 깊이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서로의 고통을 인정하지 못한 채 오래도록 침묵하고 오해하며 살아왔습니다.
이 소설은 “떠난 사람들은 우리를 배신했어.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를 버리고 떠났으니까.” (p.154)와 “논리적으로 보였던 변명거리가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도 말이 안 돼.” (p.193) 이 문장들 사이에 놓인 거리감을 줄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떠난 자들이 품은 죄책감과 남은 자들의 상실감, 그 중첩된 감정의 궤적을 추적합니다.

소설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문화적 유대감입니다. 소설은 지리적 거리보다 더 깊은 단절의 원인을 공동의 기억과 문화를 공유하지 못한 데서 찾습니다. 상처받은 이들이 서로를 탓하며 내세운 진실은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가족 전체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저마다의 고백은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이자 전체의 구조 속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조각입니다. 이들이 겪은 고생담은 억지 눈물 유발이 아니라 공감과 성찰을 요구하는 고백으로 기능합니다.
이 가족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론 비겁했고 때론 무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상처가 없는 이들의 결합이 아니라 상처를 마주하고도 함께 있으려는 자들의 연대임을 이야기합니다.
이산과 해체의 시대에 건네는 작가의 연대와 화해의 선언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눈물겨운 고백 뒤에 함께 아파하는 공동의 정서를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이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서로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가족임을 일깨워줍니다. 고백의 문학을 통해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받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