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ON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이송현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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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이송현 작가의 <스위치 ON>은 전형적인 성장소설이지만 단지 자라고, 극복하고, 견뎌내는 이야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자람'의 물리적 궤적을 스포츠라는 극한의 환경 위에 배치해 더욱 생생한 감각으로 다가오게 만듭니다.


전작 『일만 번의 다이빙』에서 공포를 뚫고 뛰어내리는 십 대 선수들의 도약을 다뤘다면, <스위치 ON>에서는 얼음 위를 질주하는 세계로 무대를 옮겼습니다.


캐나다 아이스하키 링크장을 배경으로 팀의 캡틴으로 성장한 이방인 소년의 여정과 좌절 그리고 회복을 강렬하게 담아냅니다. 동시에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십 대의 의지를 그려냅니다.





주인공 다온은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민 온 한국계 학생으로 고등학생 아이스하키 팀에서 최전선에서 뛰는 선수입니다. 외적으로는 팀의 핵심이지만, 그 이면에는 차별과 모욕, 외로움이라는 두터운 얼음장 위에 서 있는 아이입니다.


이민자 청소년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얼음 위라는 극한의 공간에서 펼쳐 보입니다. 다온은 “내 두뇌는 모욕을 견디도록 학습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내 근육은 모욕을 견디기에 역부족”이었기에 결국 분노가 폭발하게 됩니다.


<스위치 ON>은 좌절 후 재기 서사의 전형을 비틉니다. 다온은 경기력 회복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늘 골대만 보고 달릴 필요는 없겠지?”라는 깨달음은 이제 아이스하키의 승패보다 중요한 것을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알립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이 무대를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방향을 잃었다고 해서 멈춰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 다온. “달리면 되지.”라는 말은 성장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목표 상실이 곧 삶의 끝을 의미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다온은 이제 누가 정해준 궤적이 아닌 자신만의 얼음 위 궤적을 그리기로 결심합니다.


이와 짝을 이루는 인물이 피겨 선수 해인입니다. 해인은 점프에 대한 공포로 스스로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인 역시 깨닫습니다. “나도 점프만 생각하면서 뛸 필요는 없겠지?”라며 완벽함이나 승리를 위한 점프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빙상 위의 시간 자체를 다시 붙잡기로 합니다.


루크는 다온의 가장 든든한 친구이자 같은 꿈을 꾸는 파트너입니다. 낯선 땅에서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다온은 루크와의 관계를 통해 다름을 기꺼이 드러낼 수 있고, 스위치를 다시 켜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루크의 환대는 동정이 아니라, 다온이 빙판 위에서 자신을 회복하고 발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조건입니다.


생생한 빙상 묘사가 매력적입니다. 작가가 직접 경험한 다양한 스포츠의 감각을 문장으로 옮겨내며 얼음 위를 직접 질주하는 듯한 리얼리티한 리듬감을 선사합니다.





작가는 스포츠의 물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인물의 감정과 세계관, 정체성을 어떻게 구축해 나가는지, 스포츠 묘사가 곧 감정 묘사이자 정체성의 드러남으로 작용하도록 스포츠 문학다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기기 위한 스포츠가 아니라 자기를 확인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스포츠를 이야기합니다.


빙판이라는 한 공간 안에서도 추구하는 것이 다르고 견뎌야 하는 것이 다른 각각의 청춘의 풍경을 포착한 <스위치 ON>. 다온과 해인은 같은 얼음 위에 서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달려갑니다.


목표를 잃었던 다온의 가슴에 불을 지핀 건 익스트림 스포츠 크래시드 아이스(Crashed Ice)입니다. 혼자 힘으로 얼음 위를 뚫고 나가는 거침없는 주행, 비틀거리고 넘어지더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생생한 감각에 이끌립니다. 삶의 불확실성과 마주하는 방식이자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은유로 작용합니다.


<스위치 ON>의 아이들은 목표를 잃었을 때 비로소 즐거움을 기억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추진력을 얻게 됩니다. 나만의 궤적을 그려가고 싶은 십대 청춘에게 추천합니다. 방향 상실과 목적 상실의 순간이 오히려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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