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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잡은 인생 - 삶의 가동 범위를 넓히는 본격 건강 독려 프로젝트
한승혜 지음 / 디플롯 / 2025년 7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취미로서의 운동기를 넘어서 체력과 정신력을 끌어올리는 생존기이며 동시에 존재 증명서 <봉 잡은 인생>. 무기력과 우울함을 견디며 살아가던 한 사람이 자신의 무게를 감당해내기 위해 봉에 올라타고, 고통을 즐기며, 실패 속에서도 꾸준히 버텨낸 기록입니다.
한승혜 작가의 이력은 전작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다정한 무관심』 등 본래 독서와 글쓰기의 세계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몸으로 쓴 문장들입니다. 3000시간 넘게 봉에 매달려 쌓은 땀과 통증이 생생히 녹아 있는 에세이입니다.
작가는 심신이 바닥나 있던 상태에서 폴댄스를 시작했습니다. 이 운동을 시작한 건 "제 무게를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입니다. 자신의 무게, 존재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봉 위로 이끌었고 결국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오래 매달리고, 어제는 안 되던 동작을 성공시키고, 같은 동작도 보다 정교하게 구현해낼 수 있게 된 나…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를 조금 더 좋아할 수 있게 된 것 같다"(p.29)처럼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실망과 혐오, 자책에서 벗어나기 위한 싸움의 기록입니다. 봉에 매달릴수록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폴댄스는 봉에 오르자마자 그네를 타는 기분, 피터팬이 된 듯한 부유감을 선사합니다. 1-2분 만에 러너스 하이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꾸준히 쌓이는 아주 작은 성공이야말로 자존감의 실핏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한편 이 과정에서 초라함을 견디는 법도 배웁니다. 수강생 중 더 빠르게 성장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낀 열등감, 땀이 많아 기술이 자꾸 미끄러지는 손바닥에 대한 원망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하지만 집에 가는 길에 눈물을 쏟게 만들었던 동작을 성공시키는 순간의 기쁨은 그 모든 감정을 녹여냅니다. <봉 잡은 인생> 속 서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실패와 회복의 정서로 가득 차 있습니다.
폴 위에서 버티는 일은 체력을 시험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절망, 자괴감, 자기 회의와 싸우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지속하는 것 자체에 가치를 두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폴 위에서는 감정도 응축됩니다. 단 몇 분 동안 온갖 감정을 경험합니다. 기쁨, 분노, 좌절, 성취. 이 복잡한 감정의 농도가 운동을 예술로 바꿉니다. 자신이 실패하고 있다는 감각조차 때로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배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더 이상 숨지 않습니다.
한승혜 작가는 자신의 단점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땀이 많은 손, 유연하지 않은 몸, 여성으로서 받는 편견과 시선까지. 편견을 뚫고 지나가며 자신만의 무대를 구축합니다.
운동복은 도구일 뿐, 시선은 자기 안의 아름다움에 집중해야 한다는 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사회적 비교의 덫에서도 벗어납니다. 지금 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기준 삼는 방식입니다.

약점은 더 이상 숨길 것이 아닌 성장의 출발점이 됩니다. 노년의 폴댄서, 백발을 휘날리며 춤추는 할머니가 되는 꿈을 꾸며 장기적인 시야로 운동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습니다. 폴 위에서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모두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을. "삶의 무게 따위는 가볍게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강사들이나 프로 선수들도 실은 온몸에 힘을 꽉 주어 '버티고' 있다"(p.206)라고 말입니다.
무거운 삶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줍니다. 누구나 각자의 봉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대로 버티고 있으니 말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지금이라도 바뀌고 싶다는 마음을 품지만, 막상 움직이기는 어렵습니다. 삶을 견디는 방법, 자신을 덜 미워하는 기술, 그리고 실패 속에서도 계속 나아가는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를 폴댄스로 풀어낸 <봉 잡은 인생>. 작가가 건네는 다정한 손길을 잡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