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려고 한 과학 아닙니다 - 아주 사소한 질문에서 출발한 세상을 바꿀 실험들
이창욱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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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변기 시트를 뒤집어쓰고 상을 받으러 나서거나, 개구리를 공중에 띄우는 실험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는 과학자들이 존재합니다. 과학동아 부편집장 이창욱 저자는 <웃기려고 한 과학 아닙니다>에서 괴짜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그노벨상 수상 연구들을 통해 과학의 진짜 모습을 보여줍니다.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기상천외한 연구들로 가득합니다. 웜뱃의 주사위 모양 똥, 가장 맛있는 감자칩 먹는 법, 벌에 쏘였을 때 가장 아픈 부위 등 듣기만 해도 황당한 연구 주제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연구들이 단순히 웃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유체역학자 데이비드 후가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다 발견한 21초 법칙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동시에 뜻밖의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4.5킬로그램의 아기가 21초 동안 오줌을 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 역시 방광을 비우는 데 23초가 걸렸다. 갓난아기와 성인 남성의 소변량은 거의 10배 차이가 날 텐데 소변 배출에 걸리는 시간은 겨우 2초 차이였다."라는 발견에서 시작된 이 연구는 생체유체역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감자칩 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찰스 스펜스 교수의 '소리 칩' 연구는 참가자들이 헤드폰을 끼고 진지하게 감자칩을 씹는 모습으로 이그노벨상 위원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소리에는 영양가가 없는데 왜 사람들은 바삭거리는 감자칩에 끌릴까요?"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 연구는 인간이 느끼는 맛이 단순히 미각과 후각에만 의존하지 않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미각, 후각, 촉각, 청각이 모두 조화를 이루어야 최고의 맛 경험이 탄생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겁니다.


이론물리학자 알레산드로 플루키노 교수의 연구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성공에는 운과 재능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하려 했습니다.​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1000명을 행운과 불운이라는 무작위 사건에 노출시킨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40년 후 부를 거머쥔 소수는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평균 수준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부자가 된 이유는 오직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불운보다 행운을 더 많이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행운을 얻으려면 가능한 많은 기회에 도전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성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라는 플루키노 교수의 조언은 능력주의 신화에 대한 과학적 반박이 된 셈입니다.





<웃기려고 한 과학 아닙니다>는 이런 기발한 연구들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탐구합니다. 점균에게 전철 노선 설계를 맡긴 연구는 단순히 재미있는 실험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황색망사점균이 실제로 도쿄 전철 노선과 거의 동일한 최적 경로를 찾아낸 것입니다. 지능이 뇌를 가진 생물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하며 인공지능과 최적화 알고리즘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욕설의 진통 효과를 연구한 리처드 스티븐스 교수의 연구도 재밌습니다. 그는 평소 욕을 안 하는 사람이 욕을 했을 때 더 큰 진통 효과를 얻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새벽녘 마루에서 엄지발가락을 찧었다면, 욕을 좀 해도 된다. 그게 당신의 고통을 실제로 줄여줄 테니까"라는 결론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동시에 실용적입니다.


도널드 언거 박사의 관절 꺾기 실험은 과학자의 집념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그는 50년 동안 매일 왼손 관절만 꺾어서 관절염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했습니다. 결과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찾아보세요.


스탠포드 대학교 박승빈 박사의 스마트 변기 연구도 있습니다. 변기에 AI를 탑재해 소변과 대변을 분석하여 질병을 조기 진단하는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항문 주름이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르게 생겼다는 살바도르 달리의 말에서 영감을 받아 '항문 주름 인식 스캐너'까지 개발하려 했다니 상상력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입이 쩍 벌어집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그노벨상과 노벨상을 모두 받은 과학자도 있다는 겁니다. 그 주인공은 안드레 가임입니다. 그 비밀은 금요일 밤 실험이라는 독특한 연구 문화에 있었습니다. 연구실 총 업무 시간의 10퍼센트를 메인 프로젝트와 관련 없는 사이드 프로젝트에 할애한 것입니다.


15년 동안 20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대부분 실패했지만, 그 중 하나가 개구리 공중 부양 실험으로 이그노벨상을 받게 해주었고, 또 다른 하나가 그래핀 추출 실험으로 노벨상을 안겨주었습니다.


어떤 연구가 중요한 연구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중요한 연구와 그렇지 않은 연구를 미리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양한 시도가 있어야만 위대한 발견도 가능한 겁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다고 아쉬워하기보다는 호기심과 상상력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보호하고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그노벨상 창시자 마크 에이브러햄스와의 대화에서 나온 답변도 인상 깊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이 더 많은 이그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지 물었을 때, 그는 엉뚱한 생각을 밀고 나가도 용인해주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과학의 발전은 제도적 뒷받침과 사회적 관용에서 나온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일상의 사소한 궁금증, 남들이 우습게 여기는 질문, 터무니없어 보이는 상상력에서 세상을 바꾸는 발견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웃기려고 한 게 아닌데 웃기고, 별것 아닌 것 같은데 대단한 이 연구들은 우리에게 과학의 진짜 모습을 보여줍니다. 복잡한 수식과 엄숙한 실험실보다는 순수한 호기심과 자유로운 상상력이 과학의 진짜 동력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창욱 저자의 유머 감각과 과학적 통찰이 어우러진 <웃기려고 한 과학 아닙니다>. 과학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더 많은 이상한 질문들을 던지도록 격려합니다. 우리는 더 많은 엉뚱한 호기심을 환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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