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
리프레시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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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마케팅 전략가 출신 저자 제이한(J.Han)이 내놓은 <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는 현대인의 욕망 피로감을 파고든 철학적 처방전입니다.


광고 및 마케팅 업계에서 소비자 심리를 분석하던 그가 오히려 '덜 바라며 사는 법'을 설파한다는 아이러니가 이 책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욕망을 자극하는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제시하는 욕망 절제의 철학이기에 더욱 현실적이고 구체적입니다.​


23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제시한 쾌락주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책은 단순히 물질을 정리하는 미니멀리즘을 넘어 감정과 관계, 일상의 루틴까지 포함한 철학적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쾌락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부터 풀어냅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감각적 향락이나 방종과는 정반대의 개념이었습니다. 그가 말한 쾌락은 아타락시아(ataraxia), 즉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평온한 상태입니다.


"쾌락주의자란 이런 사람이다. 무엇을 '더 많이' 얻는 사람이라기보다, 무엇을 '덜 바라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 p23


성취 지향적 행복관에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욕망이 오히려 불안과 피로를 가져다줍니다.


방종 대신 절제를 선택하는 태도, 그 안에서 오히려 더 깊은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에피쿠로스의 정의에 따르면 쾌락은 단기적 자극이 아닌, 고통이 없는 상태입니다.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구분합니다. 불안을 만드는 것은 주로 마음의 문제입니다. 저자는 SNS에서의 비교,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등이 마음의 고통을 키운다며 이를 의식적으로 차단하고 내 기’을 회복하라고 조언합니다.





욕망을 세 가지로 분류한 에피쿠로스의 욕망 3분법이 소개됩니다. 에피쿠로스는 욕망을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욕망, 자연적이지만 불필요한 욕망, 부자연스럽고 해로운 욕망으로 나눴습니다. 


배고픔을 해소하려는 욕망은 자연적이고 필수적이지만, 반드시 고급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욕망은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명예와 권력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고통의 씨앗이라는 점을 설명합니다.


물질적 소비뿐 아니라 인간관계, SNS, 사회적 야망까지 폭넓게 적용됩니다. 저자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가짜 필요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지 짚어줍니다.


우리가 가진 많은 물건은 사실상 불안을 증가시킨다는 저자의 관찰이 인상적입니다. “물건을 많이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흔드는 요소도 많아진다는 것이다”라고 말이죠. 물건이 공간을 차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걸 일깨워 줍니다.


옷장에 옷이 많을수록 아침에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책이 쌓일수록 읽지 못한 것들에 대한 죄책감이 커집니다. 물건이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우리가 물건의 하인이 되어 살아간다는 표현은 소비 사회의 아이러니를 정확히 찌릅니다. 이처럼 물질뿐 아니라 감정, 루틴, 인간관계 등도 비우고 남겨야 진짜 중요한 것이 보인다는 철학적 미니멀리즘을 들려줍니다.


관계의 미니멀리즘도 흥미롭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우정을 가장 높은 가치로 여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좋은 사람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SNS에서 수백 명의 친구와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진정한 소통을 나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관계도 정리가 필요합니다. 나를 지치게 하는 관계, 불안하게 만드는 관계에서는 과감히 거리를 두라고 조언합니다.





<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는 철학을 일상에 적용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에피쿠로스의 질문법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소비 결정부터 인간관계, 일상의 루틴까지 모든 영역에서 적용 가능한 실용적 도구로 작용합니다. 철학이 추상적 사유에 그치지 않고 삶의 기술이 될 수 있게 도와줍니다.


흥미로운 건 에피쿠로스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철학 대담을 실었다는 점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와 19세기 미국의 사상가가 나누는 상상의 대화를 통해 동서양을 아우르는 덜어냄의 철학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됩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본질적인 삶을 추구한 두 사상가의 대화가 울림이 큽니다.


에피쿠로스의 고전 철학을 현대인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번역하되 그 본질적 의미는 훼손하지 않은 <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이 아니라 더 적게 필요로 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현대 사회의 과도한 욕망과 자극에 지친 모든 세대에게 필요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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