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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 -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가운데에 선 마지막 20세기 인간
임홍택 지음 / 도서출판11% / 2024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10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명문대 졸업생부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까지 9급 공무원 시험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임홍택 저자의 <90년생이 온다>는 바로 이 현상에서 시작됩니다. 단순히 안정적인 직업을 원해서일까요? 아니면 더 깊은 사회적 변화의 신호였을까요?
이 책은 1990년대에 태어난 세대가 2010년대를 거치며 드러낸 행동 양식과 가치관을 분석한 사회 관찰서입니다. 저자는 90년대생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가운데에 선 마지막 20세기 인간이라고 정의하며, 이들이 기성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생존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포착했습니다.
기존 세대들이 경험한 에스컬레이터 같은 사회적 상승 경로는 90년대생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 앞에는 유리계단이 놓여 있었습니다. 언제든 미끄러져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계단 말입니다.

저자는 이 세대가 태어날 때부터 경험한 사회적 불안정성을 지적합니다. IMF 외환위기, 카드 대란, 리먼 쇼크 등 경제적 충격을 성장 과정에서 목격한 그들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자체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9급 공무원이라는 최소한의 안전망에 매달리게 된 겁니다.
90년대생의 세 가지 특징을 일컫는 키워드는 간단함, 재미, 정직함입니다. 줄임말로 재구성된 소통 방식, 병맛 문화와 드립력, 신뢰의 시스템화를 뜻합니다.
90년대생들의 언어는 '좋아'는 '조아'가 되고, '재미있다'는 '잼있다'가 됩니다. 정보 과부하 시대에 대응하는 전략이 나타납니다.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이들은 스압(스크롤의 압박)을 거부하고 세 줄 요약을 요구합니다. 책을 읽는 뇌 구조 자체가 변했습니다. 비선형적 사고에 익숙한 앱 네이티브 세대로, 기존의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는 새로운 문화 코드를 만들어냅니다.
구직자가 면접관을 평가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관찰도 흥미롭습니다. 잡플래닛, 블라인드 같은 플랫폼을 통해 기업의 실상을 파악하고, 면접 점수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한 세대입니다. 이들에게 정보의 비대칭성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습니다.
조직 충성도에서 개인 충성도로 권력의 이동 현상이 등장합니다. 평생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회사에 대한 헌신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판단입니다. 대신 자신의 커리어와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세대의 등장은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칼퇴라는 말부터 잘못된 것 아닌가라는 문제 제기는 예리합니다. 정시에 퇴근하는 것이 칼같이 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 자체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의 변화를 관찰한 저자의 시선이 흥미롭습니다. 90년대생들의 퇴근 후 시간을 두고 기업들이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분석이 인상적입니다.
저자는 강한 통제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대임을 강조합니다. 이들은 참견이 아닌 참여를 원합니다. 적절한 참여를 통해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기존의 인내심 담론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무작정 버티라고 하지 말고,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 명확한 기한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이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조언입니다. 이직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회사의 가치를 입증하라는 역발상적 접근법도 보여줍니다.
소비자로서의 90년대생은 어떨까요?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환경에서 이들은 더 이상 호갱이 되기를 거부합니다. 양극단적 태도도 갖고 있습니다.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것에는 아낌없이 투자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는 철저히 인색한 모습을 보입니다.
고객센터로 전화를 하지 않는 세대라는 관찰도 공감됩니다. 실시간 채팅, 카카오톡 상담 등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소통 방식을 선호하는 세대입니다. 연결이 권리가 된 세대라는 표현이 이들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는 이유도 흥미롭습니다. 단순히 비용 때문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거부하는 라이프스타일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이들에게는 콘텐츠 접근성이 품질보다 우선될 수 있습니다.
이런 90년대생도 결국 기성세대가 됩니다. 이제는 2000년대 출생자들이 사회에 나서고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급변하는 사회에서의 적응과 공존의 문제라는 관점을 짚어줍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이상한' 행동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변화된 환경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