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뇌
마수드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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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당신의 뇌가 망가지면 당신도 사라진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신경학자 마수드 후사인은 뇌과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아웃사이더>에서 인간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합니다.


뇌질환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삶이 무너진 일곱 명의 환자들을 통해 우리의 자아가 얼마나 취약하고 변화 가능한 존재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환자들은 사회 속에서 역할을 가지고 살아가던 '인사이더'였지만, 뇌 손상은 순식간에 이들을 '아웃사이더'로 만들어버립니다.


동파키스탄(현 방글라데시) 출신인 저자는 영국에서 이민자로 생활하면서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피부색과 출신 때문에 겪은 차별의 경험이 그로 하여금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더욱 깊은 공감을 갖게 했고, 책 전반에 걸쳐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첫 번째 환자 데이비드의 이야기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의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바닥핵 뇌졸중 이후 그는 병적인 무관심 상태에 빠졌습니다. 집안일을 하지도, 친구들과의 만남은 물론이고 자신의 건강조차 신경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데이비드의 경우 뇌의 도파민 수용체를 자극하는 약물 치료로 회복될 수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빠르게 사회적 관계망에서 소외되었는지는 충격적입니다.


두 번째 환자 마이클은 의미 치매 증상을 보이며 점차 단어들을 잃어갔습니다. 농담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던 유머러스한 성격의 그가 열쇠나 의자 같은 일상적인 물건의 용도까지 잊게 되었습니다. 뇌 손상이 의미와 감각을 지우면서 그는 언어적 유희의 세계에서 추방당합니다.


마이클의 사례는 우리가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근본적인 틀입니다. 언어를 잃어가면서 동시에 사회적 관계에서도 멀어지는 과정은 인간이 얼마나 언어적 존재인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알츠하이머병으로 기억 상실의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는 트리시. 잘못된 기억을 바탕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증상도 보였습니다. 기억이 무너지면 인간관계도 무너지며 자아도 서서히 해체됩니다. 다행히 트리시가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사회적 관계가 개선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소외가 질병 자체보다는 질병에 대한 태도와 더 관련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문화적 편견이 질병 치료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와히드의 사례도 독특합니다. 파키스탄 출신 버스 운전사인 그는 밤마다 두건을 쓴 귀신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환영 증상 자체도 괴로웠지만 더 큰 문제는 주변 사람들의 기피, 배제 반응이었습니다.


와히드의 경우는 뇌의 아세틸콜린 농도를 높이는 약물로 치료가 가능했지만 그가 겪은 사회적 고립은 의학적 치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와히드의 사례는 의학적 치료만큼이나 사회적 이해와 수용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왼쪽에서 오는 정보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게 된 윈스턴, 온화하고 배려심 깊던 성격에서 자제력을 잃고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악담을 퍼부으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수, 갑자기 자신의 오른쪽 팔다리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 애나의 사례까지 뇌 기능 손상의 결과는 무시무시했습니다.


이처럼 일곱 환자들은 서로 다른 인지 과정의 손상으로 인해 자아의 한 조각을 잃었고, 그 결과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경 퇴행 질환이든 외상성 뇌 손상이든 간에 이들이 겪은 질환들은 결국 자아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아웃사이더>는 우리의 정체성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점을 짚어줍니다. 자아는 뇌의 다양한 기능들이 조화롭게 작동할 때 만들어지는 일종의 환상에 가깝다고 합니다. 기억, 언어, 감정, 주의력, 충동 조절 등 각각의 기능이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우리가 '나'라고 인식하는 일관된 정체성이 유지됩니다.


특히 정체성의 사회적 측면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자아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유지된다고 말입니다. 뇌질환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사회적 관계에서 소외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일곱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얼마나 쉽게 소외되는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질병 자체보다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아웃사이더>는 보여줍니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과 수용을 통해 자아를 확인하고 유지합니다. 사회적 소외는 질병만큼이나 개인의 정체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아, 정체성의 비밀을 밝힌 뇌과학 책 <아웃사이더>. 결국 연결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뇌의 다양한 부위들이 연결되어 작동할 때 정상적인 인지 기능이 나타나고, 사회적 관계가 연결되어 있을 때 건강한 정체성이 유지된다는 것을요.


일곱 명의 환자들은 모두 어떤 형태로든 연결이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뇌의 신경 연결이 끊어지기도 했고,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치료와 사회적 지지를 통해 다시 연결될 수 있었을 때 그들은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입니다. 뇌의 신경세포들이 연결되어 있고, 사회의 구성원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연결들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는 것이 건강한 개인과 사회를 만드는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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