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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에는 온기가 필요해 - 정신건강 간호사의 좌충우돌 유방암 극복기
박민선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2년 차 정신건강 간호사이자 유방암이라는 큰 병을 겪은 박민선 저자의 고통과 치유 그리고 깊은 내면의 전환을 따라가는 여정 <아픔에는 온기가 필요해>. 질병 극복담을 넘어 마음의 회복이라는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 매력적인 책입니다. 환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다루던 간호사가 자신의 삶에서 동일한 고통을 겪게 되었을 때, 그 관점과 언어는 어떤 빛깔을 띠게 될까요?
저자는 투병 이전의 삶을 "늘 행복을 찾아다녔지만, 행복해지는 법을 몰랐던 시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무언가를 쫓아가며 현재의 순간을 미뤄두곤 합니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절대적 한계 앞에 선 저자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사회적 성취, 육아, 가족관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며 살아왔는지 담담하게 써 내려갑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끝없이 자신을 몰아붙였던 삶.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다중역할의 무게감을 가감 없이 그려냅니다. 워킹맘으로서 겪는 피로와 일상의 고단함은 그 자체로 건강에 경고등을 켜는 신호가 되었고, 이 신호가 무시된 채 시간이 흐르며 암이라는 형태로 드러난 셈입니다.
유방암 진단명을 듣는 순간부터 저자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그의 기록은 물리적 고통보다도 정신적 상처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상처는 몸보다 마음이 기억한다며 암이라는 질병이 가져온 진짜 아픔은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고통이었습니다.
정신건강 간호사라는 직업적 정체성을 가진 저자가 스스로 우울증을 겪게 되었다는 아이러니. 자신의 마음을 돌보기 어려운 현실, 질병 앞에서는 누구나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보편적 취약성을 보여줍니다. 심리적 고통을 약한 감정이 아닌, 돌봄과 회복이 필요한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걸 일깨워 줍니다.

질병을 겪는 사람들이 흔히 가지게 되는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시련에 대해 분노하고 원망하는 과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드러냅니다. 그렇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환자가 된 엄마의 절절한 마음도 공감됩니다. 자녀들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은 엄마들의 마음을 울리는 부분입니다. 암울한 상황에서도 가족과 친구들의 위로를 통해 조금씩 회복의 실마리를 찾아갑니다. 우울증 환자들이 실제로는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라는 그 간절한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기연민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 원망에서 수용으로의 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치료가 끝난 후의 삶은 병 이전과는 전혀 다릅니다. 저자는 과거에 미처 누리지 못했던 현재라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들려줍니다. 병을 이겨낸 후 저자가 찾은 일상의 소중함은 치유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됩니다. 이제 행복을 미래에 미루지 않습니다.
자기 돌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아픔에는 온기가 필요해>. 저자는 결국 아픔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그 이해는 자기 연민이 아니라 자기 존중으로 나아갑니다. 가족에게 주던 그 사랑을 자신에게도 적용하게 된 순간, 진정한 회복은 완성됩니다.
유방암 투병기이지만 환자만의 책이 아닙니다. 감정적으로 지치고 삶이 버겁다고 느끼는 여성들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끊임없이 완벽을 요구받는 여성들, 그리고 정작 스스로는 돌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가섭니다. 지금 이대로의 나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감정 근육을 키우고 싶은 이라면, 이 책은 당신에게 필요한 온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