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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자비의 시간 1~2 세트 - 전2권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법정 스릴러의 대가 존 그리샴의 <자비의 시간 원제 A Time for Mercy> (전2권). HBO 시리즈 제작 결정된 이 소설은 《타임 투 킬》, 《속죄 나무》에 이어 '제이크 브리건스 시리즈'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작품입니다.
존 그리샴이 창조한 캐릭터이자 페르소나인 제이크 브리건스는 불의에 맞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의로운 변호사입니다. 이번에는 의붓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인 열여섯 살 소년 드루의 변호를 맡습니다.
<자비의 시간>은 가정 폭력이라는 무거운 사회적 이슈를 다룹니다. 드루가 자신과 여동생 그리고 어머니를 학대하던 의붓아버지 스튜어트 코퍼를 총으로 쏘는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문제는 스튜어트가 경찰관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살해된 경찰관은 공동체의 상징이자 공권력의 대표였으며, 피의자가 된 드루는 미성년자이자 가정폭력의 피해자입니다. 살인범이자 폭력의 피해자라는 딜레마 속에서 변호사 제이크는 법의 정의와 도덕적 정의 사이에서 고뇌합니다.
1권은 드루의 체포와 기소 과정을 중심으로 사건의 전모가 서서히 밝혀지는 과정을 다룹니다. 드루가 경찰관을 총으로 쏘기까지의 맥락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변호사 제이크가 이 사건을 맡으며 마주하게 되는 현실의 무게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존 그리샴 작가는 가정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그것이 얼마나 은밀하게 지속되는지, 피해자들이 왜 침묵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줍니다. 드루, 여동생 키이라, 어머니 조시는 경제적 자립이 어렵고 도움을 청할 친척이나 지인이 없는 상황에서 스튜어트의 지속적인 폭력을 견뎌야 했습니다.
스튜어트의 동료 경찰관들은 그의 도박 전력과 폭력성을 알고 있었지만 묵인했습니다. 작가는 가정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시스템의 결함으로 인해 지속되는 문제임을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어합니다. 드루는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어른들에 의해 방치되었고, 이제 사회는 그에게 법의 칼날을 겨눕니다.
읽는 내내 변호사 제이크와 함께 분노하게 됩니다. 제이크는 지역 사회의 보수적인 시선 속에서 고립감을 느끼고 가족의 불안까지 감내해야 합니다. 드루의 변호를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위협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소년의 생명을 위해 자비라는 가치를 붙들고 버팁니다.
법과 도덕, 정의와 자비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어떤 ‘선’이 진정한 선인가를 되묻습니다. <자비의 시간>은 법의 유연성 혹은 경직성에 대해 고민할 거리를 안겨줍니다. 한 명의 생사가 배심원 12인의 감정과 지역 사회 분위기에 좌우되는 현실. 법이 과연 인간의 복잡성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지 의심하게 만듭니다.

2권에 이르면 이 소설의 백미인 법정 장면이 펼쳐집니다. 실제 변호사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한 법정 분위기와 법적 쟁점들을 실감나게 그려냅니다. 증언과 반박, 법적 전략이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좌우하는지를 세밀하게 그립니다. 조금씩 밝혀지는 새로운 비밀들은 법정을 긴장으로 휘감습니다.
소설은 선과 악의 명확한 경계를 허물고 선택이라는 인간의 행위가 얼마나 복잡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규정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정당화할 수 있는 살인이라는 모순적 개념을 통해 법의 경직성과 현실 세계의 복잡성 사이에서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합니다.
변호사 제이크는 완전무결한 영웅이 아닙니다. 경제적 위기, 가족의 안정, 커리어의 지속 가능성 속에서 갈등하는 동시에 소년 드루에게 법의 이름으로 최소한의 자비를 보장하려 애씁니다.
때로는 전략적 침묵을 선택하고, 때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택합니다. 존 그리샴이 만들어낸 제이크라는 캐릭터는 도덕적 직관과 법적 한계 사이에서 고민하며 단순히 법조계의 이상형이 아닌 시대와 맞서는 현실적 인물로서 성장합니다.
<자비의 시간>은 당신이라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법이 보장하지 못하는 정의, 윤리적 판단이 법적 판단을 앞설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소설의 마지막까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