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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한다는 것은
김보미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아주 오래된 악기, 아주 낯선 사운드. 해금으로 세계를 울린 음악가의 이야기 <음악을 한다는 것은>. 해금이라는 전통악기를 실험적 사운드로 풀어낸 뮤지션, 김보미의 치열한 음악적 탐색기이자 존재의 정체성을 악기와 함께 성장시켜온 한 예술가의 섬세한 내면 기록입니다.
30년 경력의 해금 연주가 김보미 저자가 해금을 처음 잡았던 중학교 시절부터 포스트록 밴드 잠비나이의 일원으로 세계 무대를 누비는 현재까지를 두 축으로 풀어갑니다.
"아직도 어떤 곡을 연습하기 전에 한참이나 그 음악에 대한 사유와 이해의 시간을 가진다." - p31
해금은 두 줄밖에 없는 단순한 구조를 지닌 악기이지만 그 안에서 무한한 감정과 서사를 끌어냅니다. 지판이 없는 해금의 특성상 정확한 음정은 전적으로 연주자의 감각에 달려 있기에 해금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저자는 해금을 통해 자신의 소리를 찾게 되는 운명적 만남을 회고합니다.
국립국악중고등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치며 수련과 다양한 연주 경험 속에서 해금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계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사유하는 연주자가 된 김보미 저자. 해금이라는 작은 악기를 통해 바라본 세계와 인생에 대한 성찰을 담은 이 책은 '음악한다는 것'과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해금 산조를 분석하는 방식에서도 저자의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산조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한 장단 한 장단이 그러해야 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납득할 수 있는 서사를 부여했다. 어떤 음이 울면 다음 음이 토닥여주는 선율의 인과와, 때론 허무하고 때론 관조하는 등 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세세하게 분류해 산조에 늘어놓았다. 나만의 해석법을 찾은 것이다."라는 고백에서 알 수 있듯, 음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실어 연주를 사운드 스토리텔링의 영역으로 끌어올립니다.
산조라는 전통의 틀 안에서 허무와 관조, 토닥임과 분노라는 인간의 감정 스펙트럼을 세세히 분류해 해석하는 방식은 그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을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전통이라는 형식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하는 김보미의 예술적 지향점을 보여준 1부에 이어서 2부에서는 전통음악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하는 도전의 연대기를 보여줍니다.

잠비나이는 김보미가 국악 밖에서 세계를 향해 내민 또 다른 해금입니다. 해금과 록이라는 물과 기름 같던 장르를 섞어낸 장르의 파괴자로서 실험을 이어갑니다.
기존의 퓨전 국악이나 크로스오버 음악의 한계를 짚어가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던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전통음악에 서양 악기를 덧입히거나, 반대로 서양 음악에 국악기 소리를 장식처럼 가미하는 방식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교집합을 찾고자 했던 고민이 느껴집니다.
저자는 해금을 단지 연주의 수단으로 보지 않습니다. 음악은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이자, 사는 방식의 일부입니다. 해금 산조의 장단에서 삶의 리듬을 찾고, 잠비나이의 무대 위에서 고통과 환희의 교차점을 포착합니다.
세계적인 음악 축제에서의 공연 후기들이 흥미진진합니다. 글래스톤베리, SXSW, 코첼라 등 세계적 무대에서 해금을 연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화적 충돌이자 융합의 순간입니다.
잠비나이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선보인 ‘소멸의 시간’ 퍼포먼스는 한국 음악의 새로운 위상을 세계에 각인시킨 장면이었고 정체성의 확장이었습니다.
이 모든 여정 속에서 ‘음악이란 결국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관객과의 만남, 청중의 사연, 무대에서 마주한 얼굴들 속에서 음악의 의미는 재구성됩니다. 이 책은 음악과 삶, 전통과 실험, 고요와 폭발 사이를 오가는 김보미 저자의 내면 여정을 담은 기록입니다.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감각과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김보미 저자가 '음악을 한다는 것'의 본질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음악 전공자나 잠비나이 팬뿐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진솔한 여정의 기록 <음악을 한다는 것은>. 익숙한 틀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이들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