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위한 침묵 수업 -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침묵의 뇌과학
미셸 르 방 키앵 지음, 이세진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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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연구실과 강단을 오가며 매일을 분주하게 살아가던 신경과학자 미셸 르 방 키앵. 그는 일이라는 이름의 중독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연구, 강의, 프로젝트로 하루하루를 채워 넣던 그는 어느 날 안면 마비 진단을 받습니다.


의사의 처방은 아무 일도 하지 말 것. 그렇게 시작된 한 달간의 강제적 침묵은 오히려 몸과 마음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뇌를 위한 침묵 수업>은 경험과 과학적 탐구가 결합된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소음과 행동 중독이 뇌에 어떤 손상을 주는지, 회복을 위해 어떤 형태의 침묵이 필요한지 파헤칩니다.


저자는 침묵을 단순히 소리를 제거하는 상태로 보지 않습니다. 8가지 침묵을 해부합니다. 신체의 침묵, 감각의 침묵, 정서의 침묵, 의지의 침묵, 기억의 침묵, 언어의 침묵, 자아의 침묵 그리고 궁극의 침묵.


신체의 침묵은 침묵의 출발점이자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전기충격을 선택하는 존재라는 실험 결과는 행동을 멈추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낯선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행동 중독은 교감신경을 과도하게 활성화시켜 스트레스 호르몬을 남용하게 만들고 그 결과 면역력과 전반적인 생체 기능이 무너집니다. 침묵은 바로 이 고장 난 회로를 복구하는 리셋 버튼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스리려 애쓰지만 저자는 거꾸로 몸을 조율하라고 말합니다. 호흡은 자율신경계 중 유일하게 의식적으로 조절 가능한 기능이라고 합니다. 천천히, 깊게 숨 쉬는 것만으로 부교감신경이 작동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손발, 다리, 얼굴 등 특정 부위의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점진적 근육 이완법을 소개합니다. 근육이 이완되면 마음도 따라 이완된다고 합니다. 이런 몸의 회복 과정은 우리의 인지 시스템에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어서 뇌가 침묵을 통해 어떻게 집중력을 회복하는지 다룹니다.





탁 트인 사무실, 소셜미디어, 스마트폰 알림이 뇌의 전전두피질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면서 집중력을 파괴합니다. 그런데 침묵은 몸을 쉬게 하는 요법인 동시에 집중력을 회복하는 생산성의 열쇠가 됩니다.


뇌는 고요할 때 독소를 배출한다고 합니다. 별아교세포의 활동이 촉진되는 침묵의 시간은 뇌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인지적 과부하를 해소하는 결정적인 시간입니다. 그저 휴식이란 말로 치부하기엔 부족합니다. 뇌의 생존을 위한 치유 시간인 셈입니다.


무위(無爲)의 상태가 죄악시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신경과학은 멍 때리는 시간이야말로 창의성의 요람임을 증명합니다. 인간의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특정한 연결망을 활성화시키고, 이 상태에서 기억의 통합, 문제 해결, 창의적 발상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창의력은 침묵 속에서 자랍니다.





흥미로운 것은 기억도 침묵을 먹고 자란다는 데 있습니다. 기억은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라 재활성화되는 동적 시스템입니다. 저자는 실험을 통해 정보 습득 후 짧은 침묵의 시간이 기억의 정확도를 높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학습 효율성 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지점입니다.


휴식은 그저 쉬는 시간이 아니라 뇌가 정보를 구조화하고 분류하는 백그라운드 연산의 시간입니다. 기억은 침묵 속에서 살아나는 겁니다. 학습, 업무 환경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유용한 전략입니다.


<뇌를 위한 침묵 수업>은 침묵을 개인적 치유의 수단을 넘어 사회적, 윤리적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조건으로 확장합니다. 저자는 침묵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자, 삶에 대한 경청이라고 말합니다. 니체, 루소, 노자가 말한 비움의 철학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정보와 자극에 중독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침묵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한 고요가 아니라 의식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자신과 타인을 위한 공간을 남기는 것, 그것이 침묵의 윤리입니다.


저자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디지털 디톡스와 의식적 침묵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짚어줍니다. 분주함에 지친 뇌에게 침묵의 시간을 주세요. 과로 사회에서 침묵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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