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석의 유럽 건축사 수업 - 한 권으로 읽는 유럽 도시의 시공간
양진석 지음 / 와이즈베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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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건축의 언어를 풀어내는 <양진석의 유럽 건축사 수업>. 양진석 교수는 “현대 건축을 읽기 위한 키워드는 로마와 비로마로 나뉜다”라고 말하며, 이 책을 로마적 전통과 비로마적 혁신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했습니다. 한 권으로 정리된 유럽 건축사의 대서사는 건축학도뿐 아니라 역사, 예술, 철학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지적 설렘을 선사합니다.


그 여정은 아테네에서 시작합니다. 고대 그리스 건축은 조각적인 미학과 비례에 바탕을 두었고, 파르테논 신전은 그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작입니다. 이에 반해 로마는 공간 구성의 천재였습니다. 아치, 돔, 콘크리트의 발명은 콜로세움과 판테온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리스의 '조각적인' 건축, 로마의 '공간적인' 건축이라는 설명은 두 고전 문명의 미학적 철학을 극명하게 대비합니다.





로마는 도로와 상하수도, 도시계획을 최초로 정립한 문명으로, 건축을 단순한 예술이 아닌 사회 시스템의 일부로 격상시켰습니다. 고대 로마 건축의 혁신성과 실용성은 서양 건축의 표준이 되었고, 이후 모든 건축 양식은 로마를 따르거나 로마에 반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고 동로마가 남으면서, 건축은 비잔틴 양식으로 진화합니다. 돔 위에 돔을 얹는 형태, 모자이크와 이슬람의 영향이 결합된 건축이 태어났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스탄불의 성소피아 대성당입니다. 비잔틴 건축은 고전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독창적인 요소를 가미한 새로운 양식으로, 현대 건축에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어 등장한 로마네스크 양식은 수도원 건축에서 발전했습니다. 두꺼운 벽과 작은 창, 볼트 구조가 특징입니다. 이 시기의 건축은 고요하지만 위엄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며, 신앙의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이탈리아의 피사 대성당이나 프랑스의 몽생미셸 수도원이 대표적입니다.





고딕 양식은 건축의 기술적 진보가 돋보이는 시기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끕니다. “신에게로 가까이”라는 명제 아래 발전한 고딕 건축은 성당을 거대한 기도문으로 만들었습니다.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과 독일 쾰른 대성당은 그 정수입니다. 두바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부르즈 할리파도 고딕 건축의 상징성을 현대적 맥락에서 부각한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르네상스에 이르러 인간 중심의 사고가 건축을 지배합니다. 고대 로마 양식의 부활로서의 르네상스 건축은 비례와 대칭, 인간의 합리성을 추구합니다. 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두오모, 팔라디오의 빌라 로톤다는 이런 사조의 산물입니다.


바로크 건축은 정치적, 종교적 프로파간다의 도구였습니다. 대표적인 베르사유 궁전은 크기와 장식의 과시로 압도합니다. '비뚤어진 진주'라 불리는 바로크 양식은 직선보다 곡선, 대칭보다 비대칭을 강조하며 드라마틱한 효과를 연출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로코코는 더 섬세하고 장식적인 경향으로 나아갑니다. 베르사유궁, 루브르궁, 상수시궁과 같은 공간은 사치와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한 귀족 문화를 잘 보여줍니다. 저자는 이 시대 건축을 현실보다 사유가 앞섰던 시대라고 표현하며, 시대정신이 건축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해석합니다.


마지막으로 19세기 이후 신고전주의, 고딕 복고주의, 아르누보 등 다양한 양식이 공존했던 시기부터 현대 건축까지의 흐름을 다룹니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새로운 건축 재료와 기술이 등장했고, 건축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20세기에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등 다양한 건축 사조가 등장했습니다. 모더니스트들은 건축은 Less is more 원칙 아래 과거의 장식을 탈피한 미니멀리즘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시 역사적 요소를 차용하며 과거와 대화했습니다.





<양진석의 유럽 건축사 수업>은 약 180여 개의 도판과 스케치가 압도적입니다. 저자가 직접 유럽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과 손으로 그린 스케치는 공간의 감각을 체험하게 합니다.


단순히 유럽 건축 양식을 나열한 백과사전이 아닙니다. 건축이라는 언어로 인류 문명의 흐름을 읽어내는 인문학적 접근이 매력적입니다.


도시는 사람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 그릇은 시대에 따라 형태를 바꾸고, 문화에 따라 색을 달리합니다. 한 사회의 종교, 철학, 정치, 경제, 기술의 총체적 결과물인 건축으로 시대정신을 읽는 시간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일상 속 건물조차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도시는 살아 있는 역사책이라는 걸 보여주는 멋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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