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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말 - 나를 향해 쓴 글이 당신을 움직이기를
이어령 지음 / 세계사 / 2025년 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한국 현대 지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 이어령 선생님. 문학, 철학, 언어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 그의 사유는 한 시대를 통찰하는 깊은 혜안을 담고 있습니다.
<이어령의 말>은 그의 오랜 저작들에서 핵심적인 문장을 모아 엮은 어록집입니다. 일명 '이어령 사전'이라고나 할까요. 생을 마감하기까지 끊임없이 사고하고 탐구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어록집 작업은 이어령 선생님이 작고하기 7년 전부터 구상한, 후대에 남기고 싶은 최후의 기획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수많은 저작 중에서 정수만을 뽑아 엮고자 했고, 이 작업은 그의 서거 후에도 계속되어 3년에 걸친 작업 끝에 드디어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앞으로 어록집은 시리즈로 더 출간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마음을 '정신의 인덱스'라 말합니다. 그는 마음을 단순한 감정이 아닌 정신의 표상으로 해석합니다. 그의 문장에서 마음은 인간을 움직이는 본질적인 힘이며, 우리가 삶에서 겪는 기쁨과 고통을 초월하여 더 깊은 차원의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요소로 등장합니다.
특히 고통과 눈물의 의미를 재해석합니다. "세상은 늘 죽을 만큼 괴로운 것들을 넘어서야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줍니다. (...)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은 비가 그치자 나타난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것입니다."라며 고통은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가는 관문이며,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을 무지개에 비유함으로써, 이타적 감정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인간의 정체성과 자아 탐구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정의의 상대성을 지적하며 사랑의 절대성을 강조합니다. "정의로움은 입장에 따라 다릅니다. 그런데 사랑에는 입장이라는 게 없습니다. 남쪽의 사랑과 북쪽의 사랑이 따로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의를 이야기하지 않고 자꾸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인간 존재의 본질을 사랑을 통해 이해하고자 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인생의 흐름을 '결'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생각하고 행동할 때마다 결부터 찾아가세요. 꿈결을 따라 마음의 결, 삶의 결을 따라가면 땅이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세상이 한결 아름다워질 것입니다."라고 말이죠. 자신의 흐름을 따르는 삶이 중요하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문명을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어낸 과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강조하는 점은 공존입니다. "왜 아침은 이렇게도 아름다운가. 아직 그 빛 속에 어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녁노을은 왜 이렇게도 아름다운가. 다가오는 어둠 속에 아직 빛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라는 은유적 표현을 통해 상반되는 가치의 조화로운 공존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든다는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통찰도 주목할 만합니다. "온 국민이 다 같이 정보를 공유하고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군주제로부터 시작해서 나치, 공산주의 등 망해버린 나라의 공통 특징은 국민의 눈을 멀게 한 데 있다."라고 말하며 민주주의의 본질을 '정보의 공유'로 정의함으로써, 정보 독점이 권위주의 체제의 핵심 전략임을 지적합니다.
이어령은 일상 속 사물에서 철학적 의미를 찾아냅니다. 그는 연필의 모양에서도 인생을 배웁니다. "구르지 않고 손에 잡기도 편한 것이라면 원과 사각형의 중간, 여섯 모난 연필이 가장 좋습니다. (...) 여섯 모난 연필로 나의 인생을 써가십시오."라고 합니다.
둥근 원은 지나친 순응을, 각진 사각형은 지나친 고집을 의미하는데, 이 두 극단 사이의 균형점인 육각형 연필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라고 합니다. 단순한 사물에서 발견한 중용(中庸)의 지혜로, 현대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 철학입니다. 이처럼 일상적 사물에서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이어령 선생님의 시선은 우리에게 평범한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언어는 언어학자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던 이어령 선생님의 사유의 핵심입니다. 그는 언어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 안에서 철학적 사유를 전개합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 그것은 잠든 것을 일깨운다는 것이며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에 다가서도록 하는 것이며 침묵하는 것을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라며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불러내는 힘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어령 선생님에게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닌 환상의 도서관과 같은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그는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탐구하며, 언어가 가진 창조적 힘과 문화적 정체성의 핵심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언어가 점점 축약되고 간소화되는 현실에서, 그의 통찰은 언어의 풍요로움과 깊이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미학적 차원을 넘어서 철학적 성찰로 이어지는 예술의 사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길을 탐색하는 종교적 사유가 이어집니다. 더불어 공동체적 가치를 담은 '우리'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창조에 대한 사유도 흥미롭습니다. 그에게 창조는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질문을 던지는 호기심과 발견의 기쁨 사이에서 창조적 순간이 탄생한다는 겁니다.
사유의 클래식을 보여주는 <이어령의 말>.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마음, 인간, 문명, 사물, 언어, 예술, 종교, 우리, 창조라는 9가지 키워드로 풀어낸 지혜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수백 권의 저작에서 뽑은 정수를 한 권에 담아낸 이어령 생애를 관통하는 지적 여행에 동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