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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장류진 지음 / 오리지널스 / 2025년 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핀란드로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이 책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작가. 여행을 글로 남기고 싶었던 막연한 이유, 그 마음속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스에서 출간된 소설가 장류진 작가의 첫 에세이집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은 15년 전 교환학생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와의 리유니언 여행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우정과 성장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장류진 작가는 2019년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문단에 등장해 『달까지 가자』, 『연수』 등으로 큰 주목을 받은 작가입니다. 평범한 직장인, 청년 세대의 고민, 사회적 불평등 같은 주제를 재치 있는 문체로 풀어내면서도 묵직한 메시지를 남기며 MZ세대들의 큰 공감을 얻고 있는 작가입니다.
이번 에세이에서도 삶의 세세한 순간들을 포착하는 섬세한 시선과 공감대 높은 서사로 읽는 내내 담백한 문장 속에 숨겨진 깊은 여운이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릅니다.

"우리가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 - p47
작가는 15년 전 머물렀던 핀란드로 떠납니다. 친구와 함께한 여행은 함께했던 과거를 되짚고 서로를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15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작가는 전업 소설가가 되었고, 친구는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달라진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닮아 있는 둘의 관계가 참 예쁩니다. "오랜 친구는 마치 기억의 외장하드 같다"라는 구절은 오랜 우정이 가진 특별한 가치를 절묘하게 표현합니다. 친구는 우리의 과거를 보관하는 신뢰할 수 있는 저장소이자, 현재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임을 보여줍니다. 읽는 내내 반짝이는 기억의 조각들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에서는 핀란드의 세 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첫 번째 도시, 쿠오피오는 추억의 공간입니다. 15년 전 교환학생 시절을 보낸 그곳은 대학 캠퍼스와 학생식당, 그리고 오랜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작가는 다시 한번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을 만끽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무형의 작은 공동체가 어느 대륙이든, 어느 나라든, 마치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비밀 요원들처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도서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기지 삼아 '헤쳐 모여' 하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 pp119-120
책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과거의 자신이 속했던 곳에서 느끼는 친숙함이 작가를 감싸며, 책과 독자가 연결되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을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두 번째 도시 탐페레는 작가의 단편 「탐페레 공항」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소설가로서의 여정이 시작된 곳에서, 작가는 “내가 만든 이야기는 나보다 씩씩하게, 나보다 멀리 간다.”라는 말을 남깁니다. 소설 속 장면이 현실과 맞닿는 순간, 이야기는 더 이상 허구가 아닌 작가의 삶 속 일부가 됩니다.
세 번째 도시 헬싱키는 작가가 소설가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던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돌아온 후 신인소설상에 당선되었고, 이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작가는 새로운 이야기의 씨앗을 발견합니다. 친구와 함께한 순간들은 또 다른 작품의 시작이 됩니다.
작가는 과거의 자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내 인생의 가장 빛나고 좋은 시절, 내 인생의 황금기가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의 내게 말하고 싶어졌다. 네 인생의 황금기는 지금이 아니야. 훨씬 더 좋은 날이 많이 펼쳐질 거야.” (pp.168-169)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가장 반짝이던 시절은 과거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더 많은 빛나는 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가 잔잔한 위로와 희망을 안겨줍니다. 글자와 글자 사이로 흐르는 작가의 섬세한 감성이 마음속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킵니다.
"나는 '그때 참 행복했었지' 하고 내 행복에 과거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는다." - p345
'반짝인다'는 단어가 주는 설렘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정작 현재의 반짝이는 순간을 알아채지 못하는 나날들을 살고 있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그 순간이 반짝였다는 것을 깨달을 땐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이랄까요, 아쉬움이 밀려들지요.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을 읽으며 반짝임에 대한 동경은 더욱 커졌습니다. 하지만 반짝임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걸 결국 깨닫습니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충분히 반짝일 수 있다는 것과 오히려 이런 자각이 앞으로의 삶에서 더 많은 반짝이는 순간들을 발견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변하는 것들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우정을 찾은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순간이 만나는 지점에서 피어나는 우정과 성장의 기록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