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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이야기 중국 신화
김선자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신비롭고 경이로운 중국 신화의 세계 <처음 읽는 이야기 중국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반면, 중국 신화는 여전히 낯섭니다. 한국의 대표 신화학자 김선자 저자가 집필한 이 책은 동양 신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줍니다.
출간 20주년을 맞아 전면 개정된 이번 판은 기존 두 권으로 나뉘어 있던 내용을 한 권으로 묶었고,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해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고 합니다.
중국 56개 민족이 전해 내려온 다양한 신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단순한 이야기 나열이 아니라 신화의 변천 과정과 그것이 반영하는 사회적, 문화적 배경까지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서양 신화가 신들의 계보와 위계질서를 중심으로 한다면, 중국 신화는 한족 중심의 질서만이 아니라 다채로운 민족의 이야기들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중국 신화에서 세계의 시작은 혼돈에서 비롯됩니다. ‘제강’은 혼돈의 신으로, 질서를 창조하는 것이 아닌 끝없는 혼돈을 유지하는 존재입니다. 서양 신화에서의 창조적 신과는 대조적이지요. 중국 신화의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천지를 연 거인 ‘반고’ 신화는 중국의 대표적인 창조 신화입니다. 거인 반고가 죽으면서 그의 몸이 천지가 되고, 그의 호흡이 바람과 구름이 되며, 눈은 태양과 달이 됩니다. 천지창조를 인간형 거인의 희생과 연결합니다. 세계의 기원을 거대한 생명의 흐름 속에서 바라보는 동아시아적 사유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여와는 진흙을 빚어 인간을 창조한 여신입니다. 하지만 후대로 갈수록 신격이 격하되며 복희의 아내로 등장하게 됩니다. 유교적 가치관이 신화에 반영되면서 여신의 역할이 축소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면 한족 중심의 신화가 아니라, 중국 내 소수 민족의 신화까지 폭넓게 다룬다는 데 있습니다. 투자족의 여신 이뤄냥냥과 야오족의 여신 미뤄퉈는 각각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한족 중심의 여와 신화와는 또 다른 매력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창조신화에서부터 드러나는 이러한 다양성은 중국 신화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중국의 신들은 종종 인간 세계의 통치자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이들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여전히 신화적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신과 인간의 경계가 모호하며 때로는 인간이 신이 되기도 하고, 신이 인간이 되기도 하는 유동적인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황제와 치우의 탁록 전쟁은 중국 신화에서 가장 격렬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힙니다. 치우는 강철로 된 머리와 여섯 개의 팔을 가진 괴력의 신으로 묘사되며, 결국 황제에게 패배하지만 그의 전설은 전사들의 수호신으로 남아 있습니다.
북방의 신 전욱과 물의 신 공공의 대결은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동시에, 서로 다른 문명권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신들의 전쟁 이야기는 고대 중국 사회의 갈등과 통합 과정을 신화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곡식이나 농사의 기원에 관한 신화에 곡식을 주워 먹는 새나 개미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구절처럼, 비슷한 모티프가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더라도 각각의 고유한 맥락과 의미가 있습니다. 인류의 보편적 상상력과 각 지역의 특수성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줍니다.
"중국에서 신화가 오랫동안 잊혔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유가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지식인들의 의식 세계를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중국에서 신화가 겪은 억압과 망각의 역사를 설명합니다. 유교적 합리주의는 상상력의 세계를 경시했고, 이로 인해 많은 신화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이러한 신화들이 재발견되고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책의 백미는 동서남북 사방 바다 너머의 신비한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군자국, 장수국, 여자국 등 상상 속의 나라들은 당시 중국인들의 세계관과 상상력을 보여줍니다. 걸리버 여행기 확장판 느낌이랄까요.
거인들의 나라나 외다리 사람들의 나라 같은 이야기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주며, 동시에 '다름'에 대한 인식을 드러냅니다. 어떤 나라들은 이상향으로, 어떤 나라들은 경계해야 할 곳으로 묘사되며 당시 사람들의 복잡한 세계관을 반영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빛깔만이 세상 전부가 아니라는 것, 원색의 세상도 파스텔 조의 세상도 모두가 세상을 구성하는 일부라는 것"이라는 구절은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말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신화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현대적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처음 읽는 이야기 중국 신화>. 동아시아의 문화적 뿌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되는 중국 신화입니다.
신화 이야기는 인류 최초의 메타버스와도 같습니다. 다채로운 상상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동양 신화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싶다면, 최고의 길잡이가 되어줄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