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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 - 오답노트 같았던 삶에 그림이 알려준 것들
이유리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미술작품은 단순히 아름다움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론 우리의 삶을 거울처럼 비추고, 그 거울에 반사된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게 합니다. 이유리 작가의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는 이런 예술의 힘을 보여줍니다. 미술 에세이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 삶의 위선, 실패와 고통,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방법에 대해 사유하게 합니다.
예술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싶을 때 읽기 좋습니다. 내가 본 그림이 나를 만든다는 핵심을 관통하는 책입니다. 예술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토록 실용적이면서도 내면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니 신선했습니다. 예술작품이 인간의 폭력, 고통, 실패를 보여줄 때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고통을 예술로 승화할 수 있을까요? 고통 속에서 창조된 작품들은 어떻게 우리에게 위안을 줄까요?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이야기를 통해 그 해답을 얻습니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무책임한 남편과의 결혼 생활 속에서 고통받았고, 수도원으로 도망치며 딸과 친정어머니와 함께 삶을 재건해야 했습니다.
이 결단으로 메리안은 드디어 쉼의 시간을 누리게 됩니다. 예술과 과학에 몰두하며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최후의 걸작인 『수리남 곤충의 변태』는 세밀한 관찰과 아름다운 삽화를 통해 곤충 생태계를 혁신적으로 묘사했으며, 곤충학뿐만 아니라 과학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넘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실패라는 삶의 메시지를 전하는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고난 속에서도 주어진 환경을 넘어서려는 용기와 끈기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회적 시선 때문에 망설이는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안겨줍니다.
저자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삶 속에 숨겨진 어두운 측면도 놓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들 말입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고독한 도시인의 삶을 상징하는 미국의 국민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들은 황량하고 적막한 현대적 공간에서 인간의 내면적 고독을 담아냅니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은 작품만큼이나 논쟁의 여지가 많습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삶에서 드러난 아내에 대한 폭력은 가정 내 권력 불균형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호퍼의 아내이자 동료 화가였던 조세핀 버스틸 니빈슨은 호퍼의 모델로 활동하며 그의 작업을 지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늘 속에 가려진 예술가로 살아야 했습니다. 조세핀의 일기에는 호퍼와의 관계에서 느낀 신체적 폭력과 심리적 고립감이 적혀 있습니다. "키 큰 남자는 항상 근사하지만 긴 팔로 나를 때릴 때는 아니다"라는 문장을 마주하니 마음이 아릿해집니다.

예술적 동반자이자 불균형한 관계였던 부부 관계는 호퍼가 빛과 그림자의 대조로 상징되는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호퍼는 모델이 된 아내의 쓸쓸함과 무기력한 모습은 화폭에 잘 포착해 냈음에도, 정작 아내의 우울함은 무시했습니다. 관객으로서 우리는 호퍼의 작품이 단순한 고독의 표현을 넘어, 그 이면에 숨겨진 관계적 불균형을 어떻게 내포하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자존과 사랑,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끝없는 책임과 사랑의 연속입니다. 그림 한 폭을 완성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치듯, 부모 역시 자신의 부족함과 마주하며 자녀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들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스위스의 화가 프랑수아 바로의 『빵 자르는 사람』 작품에서는 사춘기 딸의 표정이 압권입니다. 그리고 엄마의 표정을 살펴보게 됩니다. 평온해 보이지만 애써 다른 곳에 집중할 뿐 속마음은 평온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부모의 역할은 단순히 자녀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캔버스에 새로운 색을 더하는 작업임을 일깨웁니다. 한발 물러나야 하는 때가 있지요. 부모로서 삶의 어려움과 기쁨을 공감하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부모들에게 위안을 주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림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삶의 철학을 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삶과 예술의 놀라운 교차점을 보여주는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을 반추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삶의 빛깔과 민낯을 모두 직시할 용기가 필요한 지금, 그림을 통해 더 나은 어른이 되는 법을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