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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엘리스 피터스의 명작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재탄생했습니다. 감각적인 색감과 관찰과 사유를 상징하는 눈을 강조한 표지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원서 제목을 충실히 반영해 제목이 바뀐 책도 있습니다.
장장 18년의 세월의 걸쳐 완성된 역사추리소설의 걸작 <캐드펠 수사 시리즈>. 원작 완간 30주년 기념 한국어판 전면 개정판은 전 21권 구성으로 현재 1~5권까지 출간되었고, 이후 순차 출간 예정이라고 합니다.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한 매혹적인 역사 미스터리 시리즈입니다. 12세기 베네딕토회 수도사 캐드펠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캐드펠 수사는 과거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탁월한 의학 지식과 탐정 기술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수도원과 마을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들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속세에 있다 느지막이 수도원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단조로운 수도원 생활에서 경험하기 힘든 사건이 벌어지면 눈이 반짝반짝합니다. 전직 군인, 약제 전문가이기도 한 캐드펠 수사의 다재다능한 능력만이 다가 아닙니다. 논리적이고 지적인 추리력과 함께 연민의 감정도 갖추고 있습니다. 게다가 순진무구한 듯 시치미를 떼기도 하는 등 인간미가 폴폴 풍기는 주인공입니다.
엘리스 피터스 작가의 역사적 고증과 서술은 중세 샤루즈베리 수도원으로 안내해 그곳에서 벌어지는 복잡하고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캐드펠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특히 중세 수도원의 생활, 당대의 관습과 전통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입니다.
1권에서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 귀더린에서 성녀의 유골을 가져오려는 수도사들과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 간의 갈등이 폭발합니다. 유골을 옮기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 지도자 리시아트가 살해되면서 긴장을 더 고조시키는데...
인간의 탐욕과 야망, 비극은 작품의 긴장감을 한층 높여줍니다. 수도원이라는 성스러운 배경 속에서 믿음과 과학의 대립도 은근 재미있습니다. 당시 어떤 방식으로 성자로 추대되고 성유물이 되는지 미묘한 속사정을 짐작할 수 있어 놀라웠습니다.
오늘날에도 영혼의 숙적이라 불리는 잉글랜드와 웨일스 두 지역 간의 갈등이 스토리에 녹아들어 있어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으면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됩니다.
수도원은 잉글랜드, 귀더린 마을은 웨일스 지역이거든요.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앙숙 관계는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역사적 갈등과 복잡한 관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갈등과 정복, 동화와 반란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의해 여러 차례 정복되고 합병되기도 했지만, 웨일스의 독자적인 문화와 정체성은 계속해서 유지되었고요. 1997년 웨일스 자치 정부가 설립되며, 웨일스어와 문화 부흥 등 웨일스의 정체성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소설에서도 잉글랜드는 웨일스를 보며 야만인이나 다름없다고, 열등하게 여기는 정서를 내포하는 대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참고로 주인공 캐드펠은 웨일스 출신 잉글랜드 수사인 만큼 두 지역을 이해하는 중립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각 권마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다채로운 인물들로 독자를 사로잡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 캐드펠 수사의 도덕적 면모와 따스한 인간미에 끌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20권 《캐드펠 수사의 참회》에서는 참회와 용서, 화해 등을 통한 삶의 평화를 찾아가는 캐드펠의 인간적인 면모를 마주하게 될 테지만, 이미 소설 곳곳에 젊은 시절에 그가 했던 일들에 대한 자책감, 내면의 갈등을 내비치는 장면들이 있어 자신의 과거의 깊이 대면하는 그의 여정을 지켜봐 주세요.
정세랑 작가가 열일곱 살에 처음 읽고 서른다섯 살에 다시 읽으며 걸작의 가치를 재차 확인했고, <장미의 이름>을 쓴 움베르트 에코가 엘리스 피터스를 두고 가장 뛰어난 추리소설 작가라고 칭했을 만큼 사랑받는 중세의 영웅 캐드펠 수사를 만나보세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