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종말 탈출기
김은정 지음 / 북레시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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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가루 집안의 대환장 지구 종말 탈출기 <최씨네 종말 탈출기>. 김은정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데 배꼽 빠질뻔했어요.


가족 소설 특유의 클리셰 서사를 생각하며 읽었다가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막장 드라마의 유치함은 쏙 빠진 채 그야말로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뜻밖의 감동 포인트까지.


미스터리, 범죄, 컬트, 코믹, 어드벤처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최씨네 종말 탈출기>. 독특한 캐릭터들과 반전이 가득한 스토리로 빵빵하게 채워져있습니다.


최씨네 가족은 삼대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조금은 독특한 사람들이 모인 집안입니다.


최씨 : 괴팍한 할아버지. 공터에서 사설 주차장 운영.

뚜러정 :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어린 남동생. 중장비 기사.

엄마 : 최씨의 큰딸. 싱글맘이자 한라의 엄마.

히메 : 최씨의 장남이었다가 둘째 딸이 된 트랜스젠더 이모.

척척 : 최씨의 막내 아들. 은둔형 외톨이 막내 삼촌.


이렇다 보니 최씨네는 콩가루 집안으로 불립니다. 작품의 중심에는 여덟 살짜리 여자아이, 최한라가 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하다보니 엉뚱미 제대로 장착한 캐릭터입니다.


한라는 가족들의 대화 내용들을 아이 특유의 시선으로 해석해 웃음을 유발하는데, 한라의 관점에서 본 가족 스토리가 이 소설의 알짜배기 재미 요소입니다.


어느 날 주차장 공터를 값비싸게 팔게 된 최씨. 그 자리에 들어선 건물은 영생구원기도원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이비라 부르는 그런 곳입니다. 이즈음에서 소설의 첫 장면, 지구 종말설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던 방송이 떠오릅니다.





게다가 최씨네와 오랜 인연을 가진 신통한 무녀가 갑자기 찾아와 집안을 들썩입니다.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찾아와, 12월 21일까지 땅속으로 들어가라고 경고를 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최씨네 씨가 마른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날짜는 하필 지구 종말의 날로 예언된 날이기도 합니다.


최씨네 집안에 어둠처럼 스며든 지구 종말의 예언. 살아남으려면 벙커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막내의 말에 가족들은 처음에는 반대하지만, 결국 지하에 방공호를 만들기로 합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겨우 한 달. 적당한 벙커 장소는 예전 공터 주차장 사무실 지하가 좋다는데 하필 그 사무실을 기도원에서는 개집으로 사용 중입니다. 무시무시한 개와 수상쩍은 기도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떻게 벙커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렇게 최씨네 종말 탈출기가 시작됩니다. 그동안은 집안에서도 서로 소통을 안 하니 가족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을 들을 수 없었던 한라. 그래서 한라도 최씨, 뚜러정, 히메, 척척이라고만 불렀던 가족 호칭에서 이제서야 아버지, 언니, 누나, 삼촌, 이모... 이런 호칭을 익히게 됩니다.


곡괭이질과 삽질의 나날들이 이어지면서, 그전까진 얼굴을 마주하면 시비만 붙었다면 이번 일로 모처럼 의기투합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무엇보다 각자의 스토리가 펼쳐지는 장면에서는 질곡 많은 삶의 단면을 임팩트있게 보여줍니다. 왜 뚜러정은 최씨 집안에 함께 있는지, 왜 막내는 지렁이 같은 상처를 몸에 달고 사는지, 왜 엄마는 한라를 데리고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이들 모두는 마음의 반창고가 많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라의 꿈은 투명반창고 발명가입니다. 아프다는 걸 표 내는 노란 반창고도 영 내키지 않는 이들을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꼭 이룰 수 있는 꿈이라 믿습니다. 지금 이렇게 불행한 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꿈을 꿨기 때문이었다는 뚜러정의 말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불행하지 않으려면 꼬맹이는 이룰 수 있는 꿈만 꿔.”라고 말했거든요.


한라는 누군가가 행복해할 때 얼굴에 얼핏 무지개가 떠오른다는 걸 느낍니다. 아픈 과거와 설움을 안고 살던 해체된 가족이었지만, 각자의 아픔을 이겨내며 다시 가족으로서의 의미를 찾아가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그나저나 최씨네 종말 탈출기는 무사히 완수할 수 있을까요? 최씨네 가족의 포복절도 탈출 소동극에 동참해보세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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