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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평점 :
스토리텔링으로 승부하는 과학작가 샘 킨의 신간 <과학 잔혹사>. 스릴러 소설 뺨치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비윤리적 과학 실험과 집착을 넘어선 광기가 보이는 섬찟한 이야기 속에서 윤리적 딜레마를 수반하는 과학 세계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집착에 사로잡혀 무언가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의 행동에는 음모론 따위는 없습니다. 오히려 논리적입니다. 이들은 과학도 '너무 철저히'하려고 하다가 도가 지나쳐 인간성을 도외시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압력을 심하게 받을 때, 윤리적 경계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스스로도 비도덕성을 의식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과학이 유토피아를 가져다준다고 해서 과학은 좋은 것이라는 함정에 스스로 걸려듭니다.
<과학 잔혹사>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선 넘은 범죄를 저지른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시신 도굴, 살인, 방해 공작, 간첩 활동, 사기 등 지식인들의 비도덕인 행태를 낱낱이 고발합니다.
찰스 다윈에서 큰 영향을 미친 생물학자 윌러엄 댐피어는 해적이기도 했습니다. 식민주의 길을 여는데 일조하며 반인류범죄를 저지릅니다. 게다가 오늘날 박물관에 전시된 대부분은 노예 무역을 통해 수집된 표본들입니다.
표본의 출처를 묻지 않는 데는 해부학자들이 압권입니다. 해부학적 발견을 수십 가지나 이룬 헌터는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모델이 되었을 만큼 두 세계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틀에 한 번꼴로 시신 해부를 할 만큼 해부용 시신을 수급하는데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현금 거래되는 해부용 시신은 시신 도굴을 넘어 결국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 행각을 부추기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이 일로 무연고 시신을 해부학자에게 넘겨주는 법을 도입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더 섬뜩하게도 역사상 시신 부족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해부학자들도 있습니다. 유대인, 정치범들을 대상으로 한 나치 해부학자들입니다.
테슬라와의 직류 교류 전쟁 뒤에 숨은 전기 실험을 알고 계시나요? 경쟁자의 기술을 부정하기 위해 에디슨은 말과 개를 전기로 고문하며 테슬라의 교류 방식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려 했습니다.
그가 한 실험들을 두고 개망나니 짓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발명왕 에디슨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더욱이 사법부 역사상 가장 섬뜩한 죽음을 선사한 전기의자 개발 역시 우아하게 물러나지 않은 에디슨의 집착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야만적 실험으로 개발된 의학계 이야기는 살아있는 인간을 상대로 하다 보니 더 경악스럽습니다. 특히 나치의 실험은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었기에 그들의 데이터만 있는 상태입니다. 그 데이터를 인명을 구하는데 써도 문제없을까요? 나치만큼 나쁘진 않고 조금 나쁜 행동은 괜찮다는 식으로 면죄부를 줘도 될까요?
20세기 중반 의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엽 절개술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정신질환자의 전두엽을 절개하는 건데 읽는 내내 소름 돋습니다.
작은 허점을 이용해 마약 분석 결과를 대충 해버린 분석가 두컨의 이야기도 놀랍습니다. 범죄가 발각되자 그의 경력 동안 행해진 3만 6000 건 전체의 분석 결과가 난리 날 수밖에 없습니다. 상소 신청이 쏟아졌고,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로 원심 판결이 파기됩니다.
<과학 잔혹사>는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미래 범죄까지도 조망해 봅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범죄, AI 범죄, DNA 범죄 등 가상 시나리오를 펼쳐봅니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범죄가 출현되는 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학적 성취 뒤에 숨어 있는 윤리적 딜레마를 꺼내든 <과학 잔혹사>. 과학적 발견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해야 하는가, 연구 과정에서의 윤리적 결함이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가... 과학이 단순한 사실을 발견하는 것 이상의 복잡한 측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과학에는 정직과 성실성과 양심적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들을 통해 윤리적인 과학이 왜 중요한지 고민해 보는 시간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