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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안쪽 - 속 깊은 자연과 불후의 예술, 그리고 다정한 삶을 만나는
노중훈 지음 / 상상출판 / 2024년 4월
평점 :
MBC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 KBS 춘천방송총국 <이스트라이프 시즌2>를 진행하는 여행작가 노중훈의 에세이 <풍경의 안쪽>.
전작 <할매, 밥 됩니까>에서 할머니 식당을 찾아다닌다는 주제가 마음에 쏙 들었는데 이번 <풍경의 안쪽>도 제목에서부터 잔잔한 울림을 안깁니다.
뭔가 고요한 분위기의 에세이인가 싶었는데 재미난 입담 덕분에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솔직한 감탄사가 곳곳에서 튀어나오며 추임새 가득한 재미난 여행썰을 듣는 기분입니다.
풍경의 겉면에만 머무르지 말고 발품과 마음 품을 팔아 안쪽으로 조금 더 진입해서, 풍경의 안쪽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어 하는 노중훈 여행작가의 바람이 담긴 제목 <풍경의 안쪽>.
1999년 여행 밥을 먹기 시작한 이후 유난히 마음이 끌렸던 장소와 홀연히 마음의 빗장이 풀렸던 시간과 한순간 마음이 일렁이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편집한 책입니다.
거대한 풍경을 메인으로 삼은 사진을 보며 사실 그가 경계한 풍경의 겉면에 홀딱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중훈 작가는 여기서 거대한 풍경보다 무심코 흘려보내기 쉬운 풍경을 더 담아내고자 노력합니다.
연중 100일 정도 안개가 끼는 중국 쓰촨의 청두에 갔을 때는 중국의 위대한 시인 두보가 그곳에 3년간 머물며 240여 수의 시를 남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가장 평화로웠던 전원생활을 했던 두보의 시간을 오늘날 되짚어봅니다. 매운 요리로 유명한 청두이지만 그보다 더 얼얼한 풍경을 마주하며 두보가 이 풍경을 봤을지 궁금해합니다.
경이로운 자연경관을 선사한 미국 모뉴먼트 밸리, 집채만 한 고래를 영접한 캐나다 노바스코샤 등 압도의 풍경을 자랑하는 여행지 다섯 곳을 소개하며 입틀막 하게 되는 풍경 깊숙한 곳으로 독자를 안내합니다.
압도의 풍경 다음에는 템포를 늦춰봅니다. 느림의 풍경에서는 여행지 골목골목을 어설렁어설렁 돌아보는 노중훈 작가의 시선으로 진행합니다. 아무것도 몰라서 충동적으로 떠나게 된 몰타에서는 대충 지도를 보며 버스를 타고 옆길로 새기도 하면서 이곳저곳 비계획적으로 돌아다녀 봅니다.
맑은 공기가 맡고 싶어져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호텔을 나와 나룻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기도 했던 슬로베니아 호숫가 마을 블레드, 대부분의 관광객이 자전거 여행을 하는 곳에서 주행 5분 만에 돌아와 반납하고 늘쩡늘쩡 걸으며 섬의 나른한 일상을 눈에 담았다는 인도양의 섬나라 라디그... 속도를 늦춘 여행의 묘미를 선사합니다.
건축, 회화, 와인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쏟아지는 예술의 풍경은 장소의 역사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건축 투어를 경험해 보고서야 왜 건축학도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한 곳인지 이해했고, 쿠킹 클래스를 경험하면서 셰프의 신실한 태도를 가슴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고, 와이너리를 돌아보며 프로방스 미식 기행의 매력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풍경에서는 현지의 소소한 일상이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국적과 성별과 사는 곳을 막론하고 오래 산 사람에게서 배어 나오는 표정을 통해 애틋함을, 내전이라는 두려운 이미지 속에서도 내 집을 찾아온 사람을 기꺼이 맞이하는 환대의 정서가 강한 코스보인들의 정과 흥을 알게 되기도 하는 등 콧날 시큰해지는 감정을 받은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자연이 있고 사람이 있는 여행지 그 풍경의 안쪽에 최대한 다가서기 위해 애쓴 노중훈 여행작가. 그의 시선은 다정합니다. "공기가 축축했고 탄산이 빠진 청량음료처럼 텁텁했다."라는 불쾌한 감정이 먼저 찾아올법한 장소마저도 그와 동행하면 편안한 풍경이 됩니다.
그 역시 풍경의 안쪽에 가닿지 못한 날들이 더 많았다고 고백합니다. <풍경의 안쪽>은 여행지에서 우리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면 좋을지, 풍경의 바깥쪽만 전전하다 끝나는 여정을 새롭게 전환할 기회를 줍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