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만나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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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대표작 『백년의 고독』으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유고 소설 <8년에 만나요>.


이 소설이 출간되기까지 참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며 심각한 기억 상실을 겪은 작가가 2014년 4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수정했던 원고입니다.


작가는 이 소설의 존재를 2008년에 이미 밝히며 곧 나올 거라는 말을 남긴 채 계속 수정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 개의 초고가 존재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말년에 이르러서는 주요 부분은 그대로 두고 세세한 사항만 수정하고 있던 상황입니다.


하지만 출판 검토서에 호의적이지 않은 평가를 내린 한 명 때문에 마르케스 재단에서는 출판하지 않기로 결정 내립니다. 이 결정에 대해 세상을 떠난 유명 작가의 미출간 유고작 출판에 대한 논쟁이 작가들 사이에서도 벌어집니다.


그리고 작가의 두 아들은 프롤로그를 통해 밝히듯 내놓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그렇게 마르케스의 유고작 <8월에 만나요>는 마르케스 사후 10주기에 맞춰 전 세계 동시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너무나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작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입니다. 매년 8월 16일에 섬으로 가는 40대 중년 여성 아나. 같은 시간에 같은 택시를 타고, 같은 꽃 가게에서 꽃을 사고, 무덤에 가서 꽃을 둡니다. 그리고 숙소에서 머물다 다음날 아침 첫 여객선을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섬에 묻히길 원했던 엄마의 무덤을 찾아가는 혼자만의 이 여행을 매년 반복합니다. 그곳은 ‘유일하게 외로움을 느낄 수 없는 고독한 장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텔 바에서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냅니다. 난생처음 남편이 아닌 남자와의 하룻밤입니다. 처음 느끼는 양심의 가책은 ‘달콤한 두려움’을 안깁니다.


다음날 남자는 아나가 읽던 소설책에 20달러를 넣어두고 떠난 상태였고, 행복한 모험의 기억을 타락시킨 20달러에 수치심과 분노가 밀려옵니다.


다음 해도 어김없이 섬으로 떠난 아나. 이제는 다른 택시를 타고, 다른 호텔로 갑니다. 이곳에서 또 행복한 시간을 갈구합니다. 하지만 그날 만난 남자는 아나가 원했던 감정을 안겨주지 못합니다.


그렇게 매년 섬에 갈 때마다 아나는 행복한 하루를 원합니다. 일생일대의 남자를 만나고 싶은 욕망을 드러냅니다. 하룻밤 우연에 나머지 인생을 맡기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연한 사건이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이 과정이 그저 불륜을 하는 중년 여성의 모습을 그려낸 통속소설처럼 느껴지겠지만, 불륜은 동기일 뿐입니다. 점점 아나의 심리에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무엇보다 아나가 섬으로 떠날 때 가져가는 소설책이 있는데요. 그때마다 작가의 최애 작품들을 소개받는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브램 스토커 『드라큘라』, 존 윈덤 『트리피드의 날』, 레이 브래드버리 『화성 연대기』, 대니얼 디포 『전염병 일지』 등 SF 소설이 꽤 등장해 흥미로웠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며 나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해온 아나의 이런 행동이 어머니의 비밀과 맞닿게 되는 장면에서는 반전 그 이상의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8월에 만나요>는 결말까지 마음에 쏙 들었는데요. 해설을 읽으며 소름이 돋더라고요.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인 어머니의 유골을 자루에 담아 집으로 들고 오는 장면이 『백년의 고독』 시작 부분과 닮아 있었습니다.


『백년의 고독』에서는 한 여자아이가 부모의 유골을 자루에 담아 집에 도착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유골 담긴 자루를 통해 가르시아 마르케스 작가는 그의 마지막 작품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해설이 가슴 깊이 와닿더라고요.


나이 먹은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라고 힌트를 주며 궁금하게 만들었던 작가의 미완성 작품이 10년의 침묵 후 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지만 저는 그의 작품을 <8월에 만나요>로 처음 접합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은 채로 손놓지 못했던 작품이 이 정도 퀄리티인데 다른 작품은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하게 만들 만큼 저는 <8월에 만나요>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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