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을 꿈꾸다 -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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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로페즈의 유작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를 감명 깊게 읽은 터라 전미도서상을 받은 대표작 <북극을 꿈꾸다>에 자연스레 관심이 끌렸습니다. 역시 배리 로페즈의 문장임을 알아볼 만큼 지적 탐구와 문학적 감수성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책입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명맥을 이은 자연주의자 배리 로페즈. 55년 넘는 세월 동안 80여 개 나라를 탐사하며 자연과 호흡해온 작가입니다.


<북극을 꿈꾸다>는 5년간 북극 구석구석을 다니며 체험한 북극 땅을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보니 북극이 정확히 어디인지조차 저는 잘 모르고 있었더라고요.


북극은 시베리아, 알래스카 육지로 둘러싸인 바다입니다. 지구본으로 보면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보이는 윗부분입니다. 대체로 북방수림한계선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북극에 해당하는 지역이 일정하지 하고 들쑥날쑥합니다. 여름철 북극의 공기가 남쪽으로 확장되는 평균 지점과 일치한다고 하니 경이롭습니다.


평면 세계지도와 둥근 지구본의 느낌은 또 색다릅니다. 그린란드가 이토록 캐나다 북쪽과 가까웠다니, 러시아 끝 베링해협과 캐나다가 이토록 가까울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북극 하면 떠오르는 건 북극곰, 이글루 정도입니다. 영화 속 알래스카 풍경 정도로만 각인되어 있습니다. 낯선 북극의 땅, 그곳에 얽힌 역사와 생태계를 <북극을 꿈꾸다>에서 만나는 시간입니다.





사진 한 장 없지만 배리 로페즈의 묘사는 마음껏 상상하기 딱 좋습니다. 알래스카에서 야영할 때 한밤중에 툰드라 새 둥지 사이를 거니는 장면에서 그가 마주한 감정은 독자로 하여금 어렴풋이나마 그 감정을 알 것만 같게 만드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밤 햇빛이라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할 생경한 장면에서 말입니다. 북극이기에 가능한 한밤중에 “얼굴에 느껴지던 빛의 감촉”을 전달합니다. 


북극은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는 개념이 사라지는 장소입니다. 몸을 뒤집는 고래처럼 거의 같은 자리에서 뜨고 집니다. 해가 지평선에 닿는 순간이 한밤중이라고 합니다.


야영하던 여름 내내 어두운 밤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방으로 얼어붙은 땅에 너그러운 태양의 연민이 넘쳐흐릅니다. 빛에 가득 찬 숭고한 순수성을 이야기하는 배리 로페즈는 이 장면으로 대지의 아름다움을 일깨웁니다.


한편으로는 북극 탐사에 얽힌 인간의 오랜 투쟁(이라 쓰고 무례한 침략이라 읽어야 하는)을 상기시키기도 합니다. 탐사 뒤에 이어지는 온갖 부조리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 마음이 착잡합니다.


1800년대 북극 포경사업으로 일명 '풍요로운 대학살' 시대가 있었고, 북극 원주민들은 유럽 디프테리아와 천연두로 90퍼센트 정도가 몰살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엔 석유, 천연가스, 광물 채취로 북극에 대한 인식은 산업 개발에 초점 맞춰진 상태입니다. 북극의 세계를 무시하고 인간들의 과제와 처지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문제는 온대의 자연 회복력과 달리 북극 생태계는 너무나도 취약하다고 합니다. 극과 극의 환경에서 적응력 자체가 느립니다.


일반적인 환경도서였다면 이쯤에서 환경운동 실천법이 소개되겠지만 <북극을 꿈꾸다>는 직설적이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한밤중의 태양빛처럼 태양이 북극 땅에 연민하듯 인간도 상상력이라는 연민을 통해 대지에 귀 기울이게 합니다.





사향소, 북극곰, 일각고래... 북극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생태 보고서이자 인간의 탐욕사이기도 합니다. 대대로 북극의 토착민들은 사냥을 하더라고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영적 책임감과 함께 수행했지만, 산업과 얽힌 인간 활동은 그야말로 끔찍했습니다.


계곡을 내처 오르는 까마귀의 경로, 풀을 뜯는 카리부의 발걸음, 겨울 해빙 위를 돌아다니는 북극곰, 강 주변 습지에서 먹이를 먹는 사향소... 배리 로페즈는 이 책에서 북극 생명의 고유한 리듬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동물을 그 배경과 분리해서 이해하는 것을 경계하고 동물과 환경을 함께 보도록 일깨웁니다.


에스키모의 삶이 붕괴되고 북극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시대에 배리 로페즈가 온 마음을 다해 북극의 목소리를 들려준 <북극을 꿈꾸다>.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인 만큼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이 책은 긴 호흡으로 경이로운 감각을 새겨가며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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