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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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의 연결고리를 이야기하는 작가를 애정합니다. ‘우리 시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고 불리는 최고의 자연 작가 배리 로페즈도 제 애정 목록에 있는 사람입니다.


『북극을 꿈꾸다』로 미국도서상을 수상한 그는 55년 동안 80여 개국을 여행하며 자연을 마주합니다. 2020년 암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사진가이자 작가로서 자연에 대한 책을 수십 권 내놓았고, 죽음을 앞두고 편집한 스물여섯 편의 에세이가 담긴 에세이 모음집이 사후 출간되었습니다.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는 우리에게 남긴 유언과도 같습니다.


여성운동가 리베카 솔닛의 서문이 인상 깊습니다. “이 에세이는 사막에서 남극에 이르는 풍요로움에 대한 예찬이자 그것의 훼손에 대한 경고다.”라고 평합니다. 더불어 자연 세계에 대한 인식이 높았던 배리 로페즈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놓쳤던 것들에 대해 배리 로페즈는 주의를 기울일 줄 알았고, 그렇기에 그는 기쁨과 앎을 선사받았음을 일깨웁니다. 주의를 기울일 때 찾아오는 통찰을 리베카 솔닛도 이어가고 있으니까요.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에서는 자연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머문 사람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연결성을 두드러지게 보이게 합니다. 그 속에는 성적 학대를 당한 배리 로페즈의 어린 시절에 대한 담담한 회고도 포함합니다.


평생을 자기 존중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 배리 로페즈. 피해자로서 복수보다 더 중요한 건 안전감을 채워주는 정서적 애착이었습니다. 아동기 성적 트라우마는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지만, 자연의 힘을 마주하는 순간 치유가 된다는 걸 깨닫습니다.


전신으로 퍼지는 형언할 수 없는 쾌감, 갈망이 완화되는 느낌은 자연만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배리 로페즈는 물리적 대지와의 연결성에 빠져듭니다. 느리고 길게 관찰하며 질문하면서 말이죠.


그는 스스로를 집요한 여행자라고 합니다. 중국 횡단 여행, 알타미라 구석기 동굴 유적지, 알래스카, 남극, 아우슈비츠, 학살된 선주민의 지역 등을 다니며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진화해왔다고 합니다.


차이를 무시하는 건 무감각한 행위이고 부당하고 위험하다는 걸 일찍이 깨닫습니다. 다양성은 생명을 위한 필요조건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그의 모든 활동이 펼쳐집니다.





그럼에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풍광은 1970년부터 살아온 오리건 서부의 집이라고 합니다. 매켄지강 북쪽 기슭의 오래된 집은 자연림 안에 있습니다. 치누크연어가 집 앞에서 산란하고, 무심코 창밖으로 눈을 돌리면 보브캣과 밍크와 흑곰이 지나갑니다.


근처 숲에는 엘크와 퓨마가 살고, 코요테와 비버, 수달, 검은꼬리사슴도 삽니다. 이들의 발자국을 자주 마주칩니다. 강에서는 물수리와 뿔호반새의 울음이, 나무에서는 수많은 새들의 울음이 규칙적으로 들려옵니다. 그리고 어느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자연 속에 지내다 보니 가속화된 기후변화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하며 고통스러워합니다. 인류 공동체를 도울 방법을 알아내기를 갈구한 퓰리처상 수상작가 월리스 스테그너로부터 영향받은 배리 로페즈는 그의 가르침대로 살아내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역량 있는 작가들에게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입니다. 우리의 정치적, 정신적 삶이 역사 저술가들이 쓴 역사에 의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에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에게 관심 많은 배리 로페즈입니다.


오늘날 미국 작가들에게는 인종차별주의, 계급 구조, 미국 사회의 폭력 이면에 높인 것을 직시해야 할 임무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백인 남성의 울타리 안에서 백인으로 자란 작가일수록 그 울타리를 만들어낸 사회적 경제적 관습, 토지의 계약 조항, 법적 특혜, 윤리적 망각까지 반드시 되짚어봐야 한다고 말이죠.


배리 로페즈는 이러한 것들을 자연의 요소들에 이끌리면서 문화적 유산의 토대를 다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자연으로부터 어린 목숨을 구했기에 공경의 마음으로 자연을 대합니다.


편견, 기후변화, 부패와 탐욕, 타자에 대한 공포를 자연 세계를 본보기 삼아 제시할 때 이해가 더 명확해진다는 걸 스스로 보여주는 삶을 살아온 배리 로페즈. 그의 여행은 신체적 노화로 더는 이어갈 수 없을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주의 기울이기, 인내하기, 몸이 아는 것을 귀담아듣기를 통해 자연 세계를 탐험했던 배리 로페즈의 지혜가 담긴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세상을 떠나기 전 구상한 이 에세이 모음집에는 위기의 시대, 부서져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내는 간곡한 메시지가 가득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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