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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의 버튼
홍단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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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미움을 산 적 있나요? 그 미움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요?
읽자마자 넷플 오리지널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딱이겠다 싶은 소설입니다. “복수를 원한다면 버튼을 누르시게. 당신이 증오하는 자에게 3천만 원어치의 불행을 내려줄 테니.” 이토록 흥미 끄는 소설이라니!
어린 시절 독후감 대회에서 상을 받아 친구의 미음을 산 경험이 있다는 홍단 작가는 <아라한의 버튼>에서 ‘미움’이라는 감정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라고 말했듯, 머리로는 이해해도 미움이라는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건 참 힘듭니다. 게다가 나를 미워하는 이에 대한 반향적인 미움도 싹트기 마련이고요.
소설 <아라한의 버튼>은 미워하는 자와 미움받는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재능 있는 1등을 경멸하는 재능 없는 2등, 부자에게 희롱당한 빈자, 앞뒤가 다른 연인 등 다채로운 인간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의 중심에 아라한이 있습니다. 촌스러운 개량 한복을 입은 채 무료 나눔으로 얻은 힙스터 헤드셋을 착용한 아라한. 손등엔 연꽃 타투까지. 총체적 난국인 차림새로 광인인 듯 힙스터 도인인 듯 이들 앞에 나타난 아라한.
인간의 몸으로도 전환할 수 있지만 그는 이승을 떠도는 혼령입니다. 아라한은 수행해야 할 업무가 있습니다. 사사로운 미움으로 사는 자를 찾아가는갑니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상대방에게 3천만 원어치 불행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미술 집안에서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실력이 부족해 언제나 2등을 하는 은휘. 쥐뿔도 없이 가난한 금희가 매번 1등을 차지하는 상황이 치욕스럽습니다. 이때 아라한의 버튼이 눈앞에 있으니 어찌 누르지 않을 수 있겠어요.
다음으로 찾아간 이는 은휘로부터 미움받던 금희입니다. 금희 역시 미움을 품고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자신에게 굴욕감을 안긴 유명 디저트 브랜드 CEO를 상대로 말이죠. 이처럼 미워하는 자와 미움받는 자는 연쇄적으로 인연이 닿아 있었고, 아라한은 차례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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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을 누르면 진짜 3천만 원어치의 불행이 생깁니다. 왜 3천만 원어치인지는 아라한의 생전 사연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버튼을 누른 자는 이제 미움이 사라졌을까요? 버튼을 누른 행위 그 자체로 그에게는 카르마 KARMA가 시작됩니다. 업보인 셈이죠.
"인간이란 미련한 미움 속에 갇힌 괴물이지." - p48
이쯤 되면 뻔한 전개이다 싶지만, 미움을 품은 인간들의 복수 레이스가 그 뻔함을 없애줍니다. 권선징악이라는 말에 담긴 진짜 의미도 깨닫게 됩니다. 한쪽이 나쁜 인간이라면 나머지는 반드시 선량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선량함이라는 조건을 누가 과연 충족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은 아라한을 만나게 되리라." - p7
미움과 복수라는 표면적인 키워드 속에는 인간의 욕망이 감춰져 있었습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복잡성과 다면성을 보여줍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복수심을 들여다볼수록 용서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하기도 합니다.
소설 <아라한의 버튼>에는 불교 경전 속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아라한은 소승불교에서 최고의 깨달음에 이른 수행자를 말합니다. 인간을 괴롭히는 근본적인 번뇌를 완전히 제거한 성자를 아라한이라 일컫습니다.
아라한의 버튼은 바로 그 번뇌에 휩싸인 인간들을 향합니다. 궁핍한 환경을 핑계 삼아 합리화하고, 오만을 사랑이라 포장하며 낮은 자존감을 집착과 분노로 표현하기도 하는 이들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아라한도 여전히 자신의 생전 기억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소설입니다. 탐욕, 의심, 욕망, 악의, 질투, 이기심...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번뇌 속에서 업보에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는 <아라한의 버튼>.
아라한의 사연은 무엇인지,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수행 여정은 어떻게 흘러갈지, 버튼을 누른 자들은 어떻게 될지. 진정한 구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다양한 군상의 이야기들 속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삽니다. 그 선택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지금 이 순간, 복수를 위한 버튼이 눈앞에 있을 때 당신은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