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앤 그리핀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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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세 모리스 해니건의 하룻밤 독백으로 풀어내는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과거와 현재를 탐색하는 여정을 담은 소설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앤 그리핀 작가의 장편소설 데뷔작으로 2019년 아이리시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2021년 아일랜드 북 어워드 올해의 신인상 수상, 2021년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도 오른 화제의 소설입니다.


모리스 씨는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 호텔 바에 홀로 앉아 있습니다. '오늘 밤은 길 테니까', '오늘 밤은 평범한 밤이 아니니까'라는 생각을 흘리며 그저 술 한잔하러 온 것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대화 상대가 앞에 있는 건 아닙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들에게 전하듯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던 다섯 명에 대해서 말이죠.





소설 첫 장면에서 기념주화를 구한다는 광고 문구를 보여주는 건 무슨 이유인지도 궁금해집니다. 토머스 돌러드는 누구이고, 모리스 씨와 어떤 관계일지.


모리스 씨는 전날 집, 땅, 사업을 모두 정리한 상태입니다. 아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말입니다. 그리고 호텔 룸을 예약해뒀습니다. 주변에는 요양원에 들어간다고 말해뒀습니다. 모리스 씨는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걸까요?


"이제 다섯 번 중에서 첫 번째 건배를 할 준비가 됐다. 다섯 번의 건배, 다섯 명의 사람, 다섯 개의 기억." - p38 


가볍게 흑맥주로 시작한 모리스 씨는 형 토니를 위해 건배합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모리스에게 용기를 주고 응원해 준 유일한 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시기에 토니 없이 인생을 헤쳐나가야 했던 모리스입니다.


두번째는 몰리를 위해 위스키로 건배합니다. 몰리는 어렵게 임신했지만 죽은 첫째 딸이었습니다. 겨우 십오 분 동안 품에 안겨있었지만 모리스 씨의 가슴속에 죄책감처럼 자리잡은 몰리. 이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모리스 씨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지 펼쳐집니다.


세번째는 다시 흑맥주로 처제 노린을 위해 건배합니다. 아내의 아버지는 처음엔 모리스 씨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여동생 노린이 환대하지 않았다면 결혼하지 못했을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노린은 조금 특이합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해있었던 노린을 찾아간 날 모리스는 노린의 무한한 환대를 받거든요.


이 정도의 인연으로 끝이면 심심합니다. 모리스 씨가 건배를 올린 인물들은 모두 돌러드가의 기념주화와 얽혀 있습니다. 첫 장면에서 등장한 기념주화를 구한다는 광고의 비밀이 이야기가 더해질 때마다 조금씩 드러납니다.





바에 올 때부터 아들이 선물한 제퍼슨 18년 숙성 몰트위스키를 가지고 왔던 모리스 씨. 네번째는 그 위스키로 아들 케빈을 위한 건배를, 마지막으로는 미들턴 위스키로 아내 세이디를 위한 건배를 올립니다.


인생 말년에 특별한 인연 다섯 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어찌 보면 단순한 소재가 앤 그리핀 작가의 손을 거쳐 기대 이상의 스토리가 탄생했습니다. 한 편의 인생 드라마 속에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읽는듯한 스릴감까지 안겨줍니다. 심장을 저릿하게 울리는 마성의 힘을 가진 앤 그리핀 작가의 간결하지만 힘 있는 문장이 매력적입니다.


모리스 씨는 이곳에서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며 상실, 그리움, 이별, 사랑, 행복 등 다양한 감정을 안겨준 그들에게 빚진 짐을 내려놓습니다. 삶을 지탱할 힘을 줬던 다섯 명의 사람에게 건배를 올린 모리스 씨. 그의 삶은 불완전하기에 여느 평범한 우리의 삶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모리스 씨의 독백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닙니다. 그의 독백은 삶과 사랑, 그리고 용서에 대한 깊은 통찰입니다. 삶과 죽음, 그 사이의 모든 것을 이야기합니다.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을 읽는 내내 나라면 누구를 떠올릴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기억은 내 인생의 특별한 순간이었음이 분명할 테지요. 부디 사랑하고 사랑받는 순간의 기억이라면 바랄 게 없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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