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서울
헬레나 로 지음, 우아름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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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가슴이 시큰거렸습니다. 의사라는 전문직임에도 동양인과 여성이라는 소수자 위치에 놓이면 차별과 혐오가 너무나도 쉽게 뒤따른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죠.


전직 소아청소년과 의사이자 한인 2세대 헬레나 로의 삶을 담은 여성 디아스포라 에세이 <아메리칸 서울>. 여성과 유색인종의 차별과 혐오 속에서 '착한 딸'로 생존해왔던 헬레나 로가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려낸 에세이입니다.


어린 시절 겪은 성폭력, 심각한 우울증을 가진 한국인 어머니의 양육 방식, 의대생 시절 시달린 성희롱, 학대를 일삼던 백인 의사 남편, 인종차별을 일삼는 동료 의사들과 의료기관 그리고 신체적 고통을 안긴 교통사고 후유증까지.


헬레나 로의 굴곡 많은 삶은 한인 여성 디아스포라의 삶이 보여줄 수 있는 총체적 난국과도 같습니다. 무너질 때마다 그는 어떻게 일어설 용기를 냈을까요?






"나는 파국을 맞고서야 자아 발견이라는 긴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 p19


미국에서 살았지만 유교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헬레나 로는 '착한 딸'이어야 한다는 것에 얽매여 살아 왔습니다. 마음속엔 작가라는 꿈을 가졌지만 입 밖에 내면 안되는 꿈이었습니다. 의대에 진학해서 이민자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부모의 아메리칸드림이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결혼만큼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다른 자매들 모두 한국인이 아닌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들은 부모님을 통해 한국 남자 이미지에 대해 이미 질색해버렸습니다. 안타깝게도 헬레나 로의 결혼 생활은 불행했습니다.


수많은 굴곡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의사 생활을 해왔던 헬레나 로는 마흔에 의사를 관둡니다. 전년도에 겪은 교통사고가 터닝포인트가 되었지만, 그 이전에 쌓여온 상처가 곪을 대로 곪았기 때문입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경험한 수많은 도시 빈민가 아이들의 사연에 정신적 고통이 심해집니다. 성적 학대당한 아이가 에이즈로 사망했을 땐, 그 자신이 겪은 일들이 떠오르며 상처를 헤집습니다. 성추행이 남긴 상처의 흔적은 자신의 환자였던 아이들에게서 본 흔적과 분리해 풀어내지 못했습니다.


울음을 경멸하던 부모 아래서 우는 것도 맘대로 하지 못했던 헬레나 로는 슬픔을 억압하고 짓눌러오기만 했습니다. 그동안 부단히 노력하며 이겨냈다고 믿었던 시간들은 그저 애도를 보류하거나 감추려 하기만 했던 시간이었을 뿐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의사직을 내려놓은 뒤엔 그가 꿈꿨던 작가의 길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피츠버그대학교 논픽션 전공 석사과정을 마치고, 국립과학재단 프로그램 TWP 글쓰기 펠로십을 받으며 그의 인생을 글로 풀어냅니다.


그 일환으로 <아메리칸 서울>도 탄생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솔직히 드러내면서 인종 차별, 여성 인권, 가족 문제 등 한인 여성 디아스포라가 겪는 보편적 문제를 보여줍니다.


글쓰기라는 여정은 상처를 치유함과 동시에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아가도록 이끕니다. 진짜 나를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며 새롭게 출발한 헬레나 로. 큰 파도 앞에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발견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란 게 그런 것 같습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상처받지만, 그 과정에서 성장합니다. 한층 더 단단해질 헬레나 로의 여정을 응원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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