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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9월
평점 :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사랑받은 작가는 사생활 면에서 초유의 스캔들, 도박, 스피드광 등 다양한 이슈몰이를 하곤 했습니다.
작가의 특별한 이 취미(?!)들을 작가 본인의 목소리로 들어볼 수 있는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49세에 발표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낸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사진만으로도 느껴지는 다정함,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집니다. 열아홉 살에 출간한 『슬픔이여 안녕』으로 프랑스 문학비평상을 받으며 천재 작가로 등극한 이후 『어떤 미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등 수많은 소설과 희곡을 발표한 프랑수아즈 사강.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이지만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장인물 사강을 필명으로 삼았습니다.
소담출판사에서 국내 정식 라이선스 계약으로 2009년 완역본으로 출간되어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 책이 2023년 리커버 개정판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10편의 에세이는 프랑수아즈 사강이 열정을 바친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만난 사람들, 심취한 취미생활을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변명도 슬쩍하면서 풀어냅니다. 더불어 그의 작품과 관련한 이야기도 엿볼 수 있어 작가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더욱 반가울 겁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는 그 시대 유명인들을 추억하는 시간을 안겨줍니다. 미국 전설적인 흑인 재즈 보컬리스트 빌리 홀리데이와의 인연이 인상 깊었습니다.
오로지 그의 목소리를 육성으로 듣고 싶어 뉴욕까지 달려갔고, 거기서 300km를 또 달려 코네티컷의 한 클럽에서 매혹적인 재즈를 감상합니다. 이틀 뒤 뉴욕에서도 다시 만나 새벽 내내 그의 음악과 함께 했고, 이후 파리에서도 해후합니다.
하지만 그 시기엔 빌리 홀리데이가 너무나도 힘겨워 보였다고 회상합니다. 뉴욕에선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녀의 굴곡 많은 인생을 보게 됩니다.
미국 대표 시인이자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와의 에피소드도 마음을 두드립니다. 어린 나이에 '매혹적인 작은 악마'로 불리며 성공적 데뷔를 한 프랑수아즈 사강은 출판사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고 한 달 내내 군중이 따라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랑, 소녀, 성에 대한 똑같은 질문을 계속 받고 매일매일이 파티의 연속이었습니다. 기진맥진해 있던 어느 날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수많은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미국 작가 중 한 명이라 언급했던 테네시 윌리엄스의 초대였습니다.
그때의 선하고 따뜻했던 테네시는 이후 점점 미소를 잃어갔고, 그런 테네시의 변화를 목격하는 프랑수아즈 사강은 안타까워합니다. 사강의 삶 역시 테네시를 계승하고 그와 거의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테네시의 인간적인 매력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 테네시가 받은 환멸과 아픔을 공감한 프랑수아즈 사강의 이야기가 가슴 아릿합니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따스함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진 깊은 울림만큼이나 쾌락의 기쁨을 표현하고 싶어 안달 난 기분을 엿볼 수 있는 글도 많습니다.
저는 프랑수아즈 사강이 이토록 유쾌한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이름에서 풍기는 뉘앙스로는 고상한 작품을 쓰는 프랑스 문학 작가일 거란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특히 도박의 어떤 점에 그토록 매료되었는지 이야기하는 장면은 쩔쩔매며 변명하는 소녀 같은 모습이 오버랩될 만큼 은근 재미있습니다.
스물한 살에 칸의 카지노를 시작으로 카지노 순회를 즐긴 프랑수아즈 사강. 소문과 달리 자신은 전 재산을 탕진하진 않았다며, 게다가 돈을 꽤 잘 따는 편이었다고 넌지시 고백합니다. 그는 어마어마한 금액보다 게임의 빠른 전개를 좋아했습니다.
이런 스피디함은 스피드광의 면모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예상치 못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도 분명 알지만, 각성과 현기증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도취시키는 스피드의 순간을 매력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스피드를 즐기다가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지만 프랑수아즈 사강은 그 누구보다 스피드를 사랑했습니다. 도발이나 도전이 아닌, 행복의 도약으로서의 스피드를요.
프랑스 작은 마을 생트로페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글, 시력을 잃은 장 폴 사르트르에게 남긴 애정 어린 편지 등 사강의 다정함을 엿볼 수 있는 글이 가득합니다. 사르트르의 장례식에도 갔던 사강은 그의 목소리, 웃음, 지성, 용기와 선의를 추억합니다.
자유로운 영혼만큼이나 이슈도 많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사강을 만나게 됩니다. 사강이 영향받은 인물, 작품, 경험들 속에서 발견한 열정을 어떻게 살아내는 힘으로 작용했는지 보여주는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입니다.
📚 "나는 지나치게 나 자신으로 강렬하게 살았던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