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인생 앤드 앤솔러지
권제훈 외 지음 / &(앤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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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보금자리 집.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평온과 휴식처가 됩니다. 하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이 요원하기만 합니다.


권제훈, 김성준, 박생강, 이선진, 임국영 다섯 작가의 앤솔러지 <전세 인생>. 주거 불안에 휩싸인 이들의 상황을 다양한 에피소드로 그려낸 단편소설 모음집입니다.


주거 불안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다섯 편의 이야기는 유머와 판타지를 적절히 섞어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각 에피소드는 독립적이지만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바로 전세 난민의 애환을 그렸다는 공통점입니다. 저마다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집'이라는 공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오꾸빠』는 프라이빗한 고급 아파트로 임장 간 신혼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새 눈만 높아져 전세로도 어려운 비싼 집을 보러 다니는 게 취미생활이 된 부부입니다.


오꾸빠(Okupa)는 스페인어 ocupar에서 온 말로 스페인에서는 빈집에 들어가 48시간 이상 거주한 것을 증명하면 거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때 빈집에 들어가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쯤에서 이들의 빈집 주인 놀이가 펼쳐지는데요. 범죄와 장난은 한 끗 차이인데 싶어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더라고요. 철없는 행동이다 싶으면서도 오죽하면 저러나 싶은 마음도 든 게 사실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유령들』은 노량진 고시촌에서 살고 있는 스물아홉 살 봉수의 생존기입니다. 에듀푸어, 카푸어, 실버푸어, 하우스푸어... 푸어의 시대. 부모도 평생을 전세 인생으로 보냈건만 봉수 역시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소방공무원에 합격했어도 창문 없는 고시원 방에서 창문이 있는 고시원 방으로 옮길 뿐, 여전히 도시 난민 신세입니다. 노량진 청년들의 삶이 꼭 떠도는 유령들과 같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 『O션파크 1302호』는 전세 사기 당한 가족의 사연이 펼쳐집니다. 한 동짜리 신축 아파트 전체가 사기 계약이었습니다. 건축주의 집도 꼭대기 층에 있다는데 사라진 채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이 땅에 저렴한 전셋집이란 게 있을까요? 전세 난민의 설움도 만만치 않은데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한 세입자들. 살아낼 힘조차 낼 수 없습니다. 집주인을 찾는다 해도 돌려받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전세 사기 피해자만 애가 타고 막막합니다.


네 번째 이야기 『보금의 자리』는 전세 만기를 앞두고 사라진 집주인이 유령으로 나타나면서 때아닌 유령과 동거 중인 세입자 이야기입니다. 집주인 유령과 세입자의 사연이 코믹하면서도 꽤나 깊은 울림을 안겨줍니다.


다섯 번째 이야기 『옵션, 없음』은 헤어진 남자친구로부터 LH 전세 자금 대출을 받아 구한 집인데 남는 방이 있다며 같이 살자는 전화를 받은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마침 반지하 방 전세 만기가 다가온 터라 고민 끝에 동거인이 됩니다.


살다 보니 옛 연인과 자신이 집을 대하는 인식이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자신에게 집은 영원히 소유가 허락되지 않은 무엇이라면, 옛 연인에게는 뜨거운 욕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자신의 의지에 의해 쟁취할 수 있고 통제되는 장소였습니다. 과연 원활한 동거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신에게 '집'은 어떤 공간인지 묻는 <전세 인생>. 내가 살아가는 공간, 내가 숨 쉬는 곳, 내가 꿈꿀 수 있는 집인지...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그저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갑갑한 마음만 들게 하는 집인지... 


누구나 공감할 만한 현실적인 주제를 짧은 이야기 속에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밀도 있게 그려낸 다섯 작품들이 남긴 여운이 진하게 맴돕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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