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렇게 귀엽게 늙으면 좋겠어
최승연 지음 / 더블:엔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인이고, 여성이며, 키가 작고, 남편과 딸아이와 살며, 곱창을 좋아하지만 없어서 못 먹는 73년생 승연씨의 씩씩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나 이렇게 귀엽게 늙으면 좋겠어>.


2009년 말부터 근 13년간 노마드 삶을 살고 있는 50대 키 작은 동양인 승연씨. 네덜란드 국적을 가진 딸 미루의 엄마인데도 '이방인'이라고 자처하는 정체성 규정이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승연씨 인생의 타임라인은 '내 집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만큼 그야말로 노마드 그 자체입니다. 다가올 환갑은 뉴욕에서 맞이하고 싶다는 꿈을 꾸는 승연씨. 부모가 되면 아이를 핑계 삼아 안정적인 거주 생활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 저로서는 놀라웠습니다.


30대 초반 뉴욕에서 아트 디렉터 생활 후 국내 연극계에서 무대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네덜란드인 남자를 만나 한국-네덜란드 다문화 가족을 이뤄 네덜란드 작은 소도시 덴 보스에 체류 중입니다. 5년짜리 부모 비자를 취득한 상태입니다. 지금의 체류조차도 팬데믹으로 줄곧 해온 세계여행을 멈추게 되면서 생긴 일입니다.


팬데믹으로 멈춤의 시간을 겪으며 불현듯 현타가 옵니다. '내 나이 50이면 뭐라도 돼 있을 줄 알았지!'라는 생각에 말입니다. 그의 삶은 이방인이 되는 경험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정체성을 안고 무얼 해야 하나 싶습니다.


<나 이렇게 귀엽게 늙으면 좋겠어>에서는 승연씨가 여행을 하며, 다문화 가족을 이루며, 네덜란드에 살면서 경험한 이방인의 삶과 그 속에서 이뤄내는 자아실현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하루에 사계절을 모두 겪는 변덕 죽 끓듯 하는 네덜란드 날씨. 감정도 날씨에 따라 오락가락하기 일쑤입니다. 오죽하면 까뮈의 소설 <이방인> 주인공도 해가 너무 강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했을까요. 날씨에도 변하지 않는 확신을 찾고 싶은 승연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토종 한국 사람이면서도 다국적 얼굴을 가졌기에 아시아에선 어딜 가든 현지화가 가능한 매력적인 얼굴의 소유자. 하지만 유럽에선 그저 키 작은 동양 여자일 뿐입니다.


남편의 고향 네덜란드에 스며들 때도 시시때때로 이민자, 외국인 신분임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생깁니다. 아이의 학교에서는 황당할 정도의 무지에서 비롯된 유럽의 인종차별을 겪기도 합니다.


행정 절차는 너무나도 무감해 오히려 정신적 폭력으로 다가옵니다. 자신이 아이의 엄마라는 걸 증명하는 수개월의 시간 동안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고서야 부모 비자가 나옵니다. 씩씩한 승연씨는 이런 시간들조차 부모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할 기회로 승화시킵니다.


원하는 인생을 찾아 여행하는 삶을 선택했으면서도 고단한 이방인 생활을 잘 버틸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노마드 삶이란 자신이 사는 곳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과 동시에 내 위치를 찾으려는 노력이 함께 해야 했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풍경들로 인해 일상이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취향 수집하는 승연씨의 노하우도 엿볼 수 있습니다.


연극인, 여행자로 불리던 시절에서 이제는 어른, 동양인, 한국인, 여성, 엄마, 외국인... 그 무엇도 어색합니다. 한 단어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승연씨는 카테고리 밖에서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문예 웹진 <장르불문>을 창간하며 예술가로 살아남기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승연씨. 이방인이란 위치를 즐기면서 그저 어디서든 씩씩하게 "창작합니다!"를 외치는 그의 삶을 응원하게 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