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책 - 사람과 사람 사이를 헤엄치는
정철 지음 / 김영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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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차 카피라이터 정철 첫 산문집 <동사책>. 한두 줄 압축된 문장의 글쓰기를 해온 그가 이번엔 긴 글을 썼습니다. 그 주제가 정철답습니다. 단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단어는 동사입니다. 삶의 순간들을 동사스럽게 포착한 정철의 시선을 만나게 됩니다.


동사만으로는 문장의 뜻을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형용사를 붙여야 이해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부족한 듯 보이는 동사가 오히려 훨씬 자유로운 언어더라고 합니다. 움직이는 말 동사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지 동사의 매력을 듬뿍 담은 <동사책>입니다.


'붙이다'의 반대말은 '떼다'입니다. 하지만 '안 붙이다'로 쓰면 틀린 걸까요? 어린 시절 학교 시험에서는 틀린 걸로 채점되었다고 합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반대말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저지르다'의 반대말은 '수습하다'입니다. 하지만 정철은 '망설이다'가 아닐까 하며 묻습니다. 저지름과 망설임 사이에 일의 시작 지점이 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가다'의 반대말은 '오다'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정철은 '가기를 망설이다'로 생각해 봅니다. 너무나도 당연시했던 반대말조차 이렇게 심오한 질문거리를 던져줍니다.





직장인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1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회사에 나를 1 만큼 다 쓰면 가족, 친구, 나에게는 쓸 게 없습니다. 회사에 나를 0.5만 쓰고 나머지 0.5는 내가 사는 세상에게 나눠주라고 합니다. 우리 삶은 회사에서만이 끝이 아니잖아요.


글로는 잘 표현하지만 말하기는 자신 없어하는 정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예능 방송에서조차 말을 하는 대신 들어주는 역할을 한 것처럼 강연이 있는 날이면 목소리가 떨린다고 고백합니다. 스스로는 그만하면 잘했다는 위안을 하지만 내심 아쉽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건 유창한 말이나 현란한 강연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어눌하더라도 말속에 진심이 보일 때라는 걸 깨닫게 된 에피소드가 울림을 안겨줍니다.


말하는 것보다 어려운 동사 '듣다', 위기를 극복하는 동사 '견디다', 세상 모든 목마름을 치유하는 동사 '가다', 잠시 멈춰 생각할 기회를 주는 동사 '떠나다' 등 동사로 삶의 구석구석을 새롭게 바라보는 에세이 <동사책>. 정철이 만들어낸 '사람하다' (안아주고 믿어주고 용기를 주는 동사)라는 동사처럼 사람 노릇 하는 삶을 바라는 따스한 마음이 깃든 책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어제보다 낯설게 그리고 나답게 쓰기 위해 노력해온 저자. 이 셋을 충족할 때 비로소 정철다운 글이 탄생하는 겁니다. 긴 글을 펼쳐 보인 <동사책>이지만 카피라이터의 습관은 단 한 문장에서도 스며들어있구나 싶더라고요. 정철답게 문장 하나하나가 감동을 안겨줍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긴 여운을 주는 문장들을 만나보세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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