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 - 생존을 위해 진화를 택한 기후변화 시대의 지구 생물들과 인류의 미래
소어 핸슨 지음, 조은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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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활동과 기후변화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생물학자 소어 핸슨의 책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 기후변화 생물학의 최전선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기후 문제는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막기 위한 행동에는 나서지 않는 모순을 가졌습니다. 인지와 무시가 동시에 일어나는 분야인 겁니다. 이걸 해결하려면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대중은 불특정 다수의 익명의 피해자보다 신원이 밝혀진 피해자에게 더 공감하고 반응한다는 '인식 가능한 피해자 효과'를 활용하는 겁니다. 소어 핸슨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동식물의 삶에서 실제로 벌어진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종은 각자 자기가 사는 곳의 특수한 생태적 상황에 적응에 변화해 왔습니다. 그런데 전례 없이 빠른 기후변화의 속도가 문제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대멸종에 대한 경종도 숱하게 울렸기에 동식물의 미래는 결국 멸종으로 향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많은 생물종이 실시간으로 대응하며 역경에 맞서고 있다고 사실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연은 파괴되어도 회복할 거란 믿음으로 우리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기후 문제를 방치했습니다. 소로가 머문 숲의 월든 호수 근처는 지난 160년 동안 주변 평균 기온이 2.4도 상승했다고 합니다. 월든 호수 얼음 두께가 60센티미터 이상에서 지금은 고작 5센티미터라고 합니다.


꽃의 개화기와 벌의 활동기가 어긋나기도 합니다. 많은 동식물이 "너무 더워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열을 견디는 능력은 종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사막 동물들조차 폭염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늘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생식 활동이 사라져 결국 사라질 지경입니다.


연어를 사냥하던 회색곰이 평소보다 일찍 익어버린 열매를 먹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계곡 주변 연어 사체가 줄어들면 다양한 청소동물이 덩달아 줄어들고 바다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중요한 에너지 흐름이 끊깁니다.


산에 살던 새들은 평균기온 0.39도 상승만으로도 바로 서식지가 바뀌었습니다. 바다의 수온 상승과 질병의 시너지로 해양 생물은 감소했습니다. 생활필수품이 사라지는 서식지입니다. 껍데기를 만드는 해양 생물에겐 해양 산성화가 껍데기의 강도를 약하게 만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식물의 선택은 거처를 옮기거나, 적응하거나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 기다립니다. 대이동은 해당 서식지의 핵심종이 사라지기도 하는 반면 새로운 종이 추가되기도 합니다. 먹이 경쟁 구도가 변하면서 자연 군집이 총체적으로 재배치됩니다.


변화에 적응하며 진화한다는 것은 무척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거라고만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일어나는 경우를 이 책에서 목격할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변화에도 동요하는 종이 있는 반면 유연한 종도 있다는 겁니다. 빠른 시간에 갑자기 탈바꿈할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인간보다 낫네요. 생물종이 급격한 변화를 일궈내는 겁니다.





적응을 한다는 것은 변화하는 상황에서 유용한 능력입니다. 그런데 실제 진화가 일어나는 방식을 보여준 생물종이 있다는 점은 정말 놀랍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된 허리케인 도마뱀이 주인공입니다. 두 번의 허리케인으로 초토화한 섬에서 살아남은 도마뱀은 허리케인에도 날아가지 않고 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던 도마뱀들이었습니다.


콜린 도니휴 박사가 낙엽 청소기를 들고 직접 그 섬으로 가서 실험한 영상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허리케인에서 살아남은 도마뱀은 발가락의 둥근 패드가 더 크고 앞다리도 길었다고 합니다. 겨우 두 번의 허리케인으로 적자생존이 일어나버린 거죠.


이후 다시 그 섬을 찾았을 때 어린 도마뱀들은 부모에게서 큰 발가락 패드를 물려받았다는 걸 확인합니다. 기후변화가 종의 행동은 물론이고 종 자체를 변형시킨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연구가 되었습니다.


보통 형태가 변하는 조정을 거친다 한들 제 군집 안에서 인지할 수 있는 선을 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소성이 극한에 달하는 훔볼트오징어 사례는 진기명기 그 자체입니다. 10년 전 큰 수온 상승 탓에 멕시코 어장에서 사라진 훔볼트오징어. 하지만 알고 보니 여전히 그곳에서 살고 있었고 오히려 그 수가 늘어나 있었다고 합니다.


대신 예전의 절반밖에 안 되는 생장을 마쳐 번식했고, 다른 먹이를 먹었고, 절반의 수명만큼만 산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몸 크기 자체가 훨씬 줄어서 어부들도 다른 종인 줄 알고 버렸다는 겁니다. 과거에 훔볼트오징어를 낚기 위해 사용한 미끼를 물지 못할 정도로 작아져 버린 겁니다.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 중인 갈색펠리컨, 더 이상 춤추지 않는 큰가시고시, 비건으로 진화한 알래스카 회색곰, 점점 사나워지고 있는 늑대거미, 겨우 한두 세대 만에 몸을 변형시킨 아놀도마뱀과 훔볼트오징어 등 이 책에 등장하는 22종의 이야기는 기대 이상의 전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인간의 느긋함은 지긋지긋할 지경인데, 야생의 생물들은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식단의 급격한 변화를 이루어 번성하기도 하고, 이동하고 적응하고 대피하는 동식물의 대응은 놀라웠습니다.


기후변화로 동식물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개체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를 바탕으로 인류의 미래에 관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짚어주는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 수많은 생물종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사이 인간은 무엇을 하고 있죠? 저자가 생물의 대응 방식을 들려준 이유는, 여전히 화석연료가 세계 경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선택하기만 한다면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짚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진화라는 기회와 멸종이라는 위기 사이에서 줄타기 하고 있는 생물들의 사정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이뤄낸 혁신을 사피엔스 사회에 적용해 보는 겁니다. 한두 세대 만에 변화를 이끈 생물처럼 우리도 단기간에 변화의 문화를 끌어내기 위한 행동을 촉진하자는 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세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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