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의사의 코로나
임야비 지음 / 고유명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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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팬데믹은 3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고서야 종식 선언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닙니다. 누군가는 코로나로 사망하고 있고 일일 확진자 수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마스크 5부제, 사회적 거리두기 등 별난 일들이 다 있었다며 추억거리가 생겼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상처를 입은 이들도 많다는걸... <그 의사의 코로나>를 읽으면서 일깨우게 됩니다.


코로나로 난리도 아니었던 초창기 기억하시나요. 최전선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의 땀범벅 모습을 담은 사진은 뉴스 기사로도 봤을 겁니다. 의료진이니깐 그렇게 하는 걸 당연시했거나, 봉사자들의 노고를 우리는 너무나도 빨리 잊어버린 건 아닐까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현장에 있었던 의사의 '지나고보니 참으로 스펙터클했다' 식의 책이겠거니 생각하며 시작했다가, 눈물과 분노를 오가며 몰입하며 읽고 있더라고요. 책장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짙게 머뭅니다.


사십 대 초반에 의사를 그만둔 의사였던 '그 의사'. 임야비라는 필명으로 작가로 활동하며 여러 극단에서 드라마투르그(연출가와 함께 작품의 해석 및 각색 작업을 하며 문학적 조언과 레퍼토리 선택 등에 관여)로 일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세상을 덮쳤을 때 '그 의사'는 의사 면허증을 다시 꺼내 코로나 의료 봉사에 뛰어듭니다. 지방의 외진 산속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말입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정신병원이라는 그곳에 코로나가 덮쳐 건물 하나가 코호트 격리됐고, 너무 위험해서 기피하는 그곳을 그는 선택했습니다.


"이곳은 남의 위험을 치료하기 위해 나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곳이다." - 책 속에서


그리고 그곳을 떠날 즈음엔 마음이 치유됩니다. 의사를 그만둔 '그 의사'가 의료 봉사에 뛰어든 건 헛헛하고 불안했던 마음을 달래려고 무엇이라도 해야 했던 이유가 있었거든요. 대장 천공 복막염으로 수술을 했지만 악화되어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한 어머니, 그런 아내의 곁으로 100일 만에 뒤따라간 만성 폐섬유화증을 앓던 아버지. 부모님이 연이어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그 의사의 코로나>는 코로나 최전선에서 의료 봉사를 하던 시점과 부모님의 마지막 시점을 교차하며 들려줍니다. 코로나를 앓던 정신 질환자들과 숨이 꺼져가는 부모님의 죽음이 공명하며 진행하는 구성이 일품입니다. 장소와 시간 배경이 다른 두 장면이 이어지는 절묘한 오버랩을 글로 표현하는 부분이 정말 예술입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정신 병원 환자들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 병원의 일상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위험한 일을 묵묵히 해내는 의료진들의 모습은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합니다.


건물은 낡고 열악해 을씨년스러웠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따뜻했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에서 수녀가 되었다가 코로나가 터지자 의료봉사하러 온 의사, 직원들 PCR을 도맡으며 열심히 뛰어다닌 진료부장, 아수라장 스테이션을 지킨 수간호사, 발 벗고 나서는 할아버지 약사, 24시간 365일 일하는 미스터리한 원무과장 등 숭고한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힘든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에 걸린 정신병원 환자들을 살리려 온 힘을 다하고 나니 오히려 자신이 치유되어 있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부모님을 떠나보낸 후 방황하기만 했던 '그 의사'의 진정한 애도의 시간이 된 셈입니다.






'그 의사'의 두 번째 의료 봉사는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지정된 공공 정신병원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총체적 난국입니다. 코로나 환자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시스템 때문입니다. 의료 봉사자들이 기피하는 정신 병원이다 보니 공중보건의들이 끌려오질 않나, 환자를 직접 보는 일은 없고 서류 작업만 열심히 합니다. 그렇다고 한가하지도 않습니다. 행정 일만으로도 벅찹니다. 콜 대부분은 서류 입력을 재촉하는 잡콜입니다.


공공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전문의는 공무원 의사입니다. 그곳엔 이미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전문의들이 있고 레지던트도 있다는데 '그 의사'는 그들의 모습을 코빼기도 볼 수 없습니다. 코로나 환자를 돌보는 건 끌려왔거나 봉사하러 온 의사들 몫입니다. 병동 간호사들조차 공무원 정신과 전문의들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개판 오 분 전인 시스템이었던 겁니다. 무사안일, 책임회피, 탁상행정에 깊~~~~~~은 빡침이 담긴 문장들의 연속입니다.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도 서류 작성만 잘 하면 된다는 정신과 공무원 의사들의 나태한 마인드, 좋은 시설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시스템 등 공공 의료 시스템의 허울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습니다. 공무원 의사들 중에서도 제대로 된 사고를 가진 이들은 하나 둘 떠납니다. 떠나는 이들마다 한결같이 "여긴 절대로 안 바뀝니다."입니다. 간호사들도 체념 상태입니다.


다행히 '그 의사'는 이미 정신병원 의료 봉사 경험이 있었고 엉망진창인 그곳을 일시적이나마 그가 있는 동안만큼은 제대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다들 알면서도 안 될 거라 생각하고 나서지 않았던 일들을 '그 의사'가 몇 가지는 해냅니다. 하지만 그가 떠난 이후엔 어떨까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 생생하게 기록한 르포르타주 <그 의사의 코로나>. 확진자 몇 명, 사망자 몇 명이라는 숫자 뒤에는 사람이 있음을 진실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그 의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세요.


저는 뭔가 슬프고 애통할 것 같은 책은 애초에 손이 잘 안 가는 편인데요. 이 책은 읽기 잘했다 싶더라고요. 아직 올 한 해 많이 남아있지만, 손가락 꼽을 만큼 인상 깊은 책입니다. 눈물 폭탄과 분노 폭탄만 있는 게 아니라 배꼽 잡게 만드는 웃음 폭탄도 곳곳에 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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