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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이야기 - 인생을 좌우하는 신경계
아르민 그라우 지음, 배명자 옮김 / 생각의집 / 2023년 5월
평점 :

불과 좀전에만 해도 아무 문제 없이 행동하던 사람이 갑자기 눈이 안 보이고 말을 못 한다면 어떨까요? 너무나도 익숙하게 말하고 움직이고 감각하고 생각하다 보니 뇌의 중요성을 평소에는 잘 못 느끼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의식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뇌의 작업 결과인데 말입니다.
독일 루드비히 하펀 클리닉 신경학과 수석의사이자 뇌졸중 전문 의학 박사 아르민 그라우의 <신경 이야기>는 신경과 병동의 모습을 보여주며 뇌졸중, 말초신경염, 간질, 치매, 편두통, 파킨슨병 등 뇌질환을 포함해 신경계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신경 질환에 대해 살펴봅니다.
어린 여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등장합니다. 사고 당시 환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증상을 보여주다 보니 함께 그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대부분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보니 그 환자가 내가 되었을 수도, 부모님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증상으로 병명을 찾고, 원인을 찾아가며 치료하는 여정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에 푹 빠지게 됩니다.
가장 먼저 다루는 질병은 뇌졸중입니다. 혈관에 혈전이 막히면서 생기는 뇌졸중. 뇌는 혈액공급이 완전히 중단된 후 약 10초면 벌써 뇌 기능이 멈추고 환자는 의식을 잃습니다. 4~5분이 지나면 뇌세포가 죽기 시작합니다. 뇌 조직 구조가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되고 이후 뇌경색으로 이어집니다.
뇌졸중은 이미 원인과 위험요소가 대중에게 잘 알려진 편이지만 우리가 유독 두려워하는 질병입니다.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 장애가 무서워서이지요. 일상생활이 제한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뇌졸중 환자의 경우 혈전용해술도 빠르게 하고 큰 혈관에는 카테터 시술로 뚫으며 재빠른 조치를 했고, 예후도 괜찮은 케이스였습니다. 뇌졸중 전문 병동이 잘 갖춰진 독일이 부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저자는 재활 과정에 대한 노력도 강조합니다. 뇌졸중에 걸린 사람의 약 3분의 1은 첫해에 급성 우울증과 불안증을 겪는다고 합니다. 뇌졸중 이후의 후속 관리에 대해 간과하지 않도록 조언합니다.
의학적으로 설명을 하는 부분은 용어가 낯설게 다가올 수 있지만 질병에 관한 전반적인 정보와 진행 과정을 알 수 있으니 큰 도움이 됩니다.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신경계의 오작동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치료할 수 있으며,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신경 이야기>. 덕분에 뇌가 우리 몸과 마음에 끼치는 영향력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무엇보다 고혈압 조심해라, 당뇨 관리해라, 운동해라, 식습관 조절해라 같은 뻔한 말이 절대 뻔한 말이 아니라는 걸 짚어줍니다. 이 책을 통해 평소 신경 써서 지키지 않을 때 우리 신경계가 어떻게 고장 날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뇌졸중 외에도 다양한 신경 질환이 있습니다. 신경에서 근육 세포로 자극 전달이 잘되지 않아서 생기는 말초신경염의 경우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증상만으로는 근육 질환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신경 질환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례가 등장하기도 하는데요. 소시지를 식판에 담은 채식주의자의 이야기입니다. 운 좋게도 병원 직원이다 보니 그 모습을 본 동료들이 뇌전도 검사를 받으라 권유를 했고 간질 발작이 진단되었다고 합니다. 뇌신경세포가 일시적으로 이상을 일으켜 유발되는 간질에 대해서도 원인, 증상, 치료법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정신 능력과 일상생활 능력의 감소와 상실로 이어지는 치매도 두렵습니다. 단기 기억이 먼저 소실되고 시간감각, 방향감각이 약해지고 무서운 건 나를 잃어버린다는 점입니다. 효과적인 치매 치료법이 아직 없기에 더 두려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치매는 예방 가능한 질병이라고 합니다. 뇌졸중 예방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신체 활동을 해야 근육, 심혈관계, 정신 능력이 모두 향상되는 겁니다. 뇌 기능의 장애를 기반으로 하는 치매는 일찍 발견할수록 치료가 효과적입니다. 우울증 치료 시 개선되는 가짜 치매와의 차이점도 알려줍니다.

의과대 실습생이 갑자기 사물이 겹쳐 보인다며 찾아온 사례도 있습니다. 뇌와 척수에 있는 염증이 문제가 된 경우입니다. 팔뚝에 압박붕대를 감은 듯한 감각 장애를 며칠 겪었던 경험 외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다가 시각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는 아주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중추신경계 만성질환인 다발성경화증을 진단받습니다. 염증이 신경을 훼손한 겁니다. 자가면역 질환으로 분류된 이 질병은 강한 피로감으로 우울증이 생기는 등 삶의 질을 낮추게 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주기적으로 신경 MRI를 통해 질병 활동을 파악해야 한다고 합니다.
수업 시간에 망치질하는 듯한 편두통에 구토, 시각장애, 언어장애까지 순식간에 닥친 17세 여학생의 사례도 있습니다. 격렬한 두통을 호소하는 경우 지주막하출혈을 염두에 두고 살펴본다고 합니다. 이 환자의 진단명은 편두통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증상은 아니었지만 저도 편두통으로 고생한 시기가 있어 남일 같지 않더라고요.
알츠하이머 다음으로 흔한 신경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도 합니다. 완치는 안되어도 증상을 다스릴 순 있는 질병이라니 정말 눈 감을 때까지 무탈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느껴집니다.
<신경 이야기>는 전반적인 신경 질환의 정보와 개인적 차원의 예방법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이 유발하는 신경 질환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환경 개선도 촉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신경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유용한 의료 시스템의 필요성도 토로합니다.
환자를 직접 진찰하며 설명하면서 직관적인 그림과 함께 보여주니 신경 질환의 대표 질병에 대한 정보를 수월하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신경 질환에 대해 알면 알수록 평소 하는 동작들이 얼마나 정교한 시스템에 의해 이뤄지는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다양한 신경 질환의 증상과 치료 여정을 살펴보면서 건강한 신경계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