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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평점 :
정의와 공정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마이클 샌델의 또 한 번의 역작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이 책은 1996년 <민주주의 불만>이란 제목으로 초판이 나왔던 책입니다. 당시엔 세계화 시대에 이르러 닥친 위기에 집중했다면, 27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에서 내놓은 개정판에서는 최악의 상황에 놓인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의 근저를 살펴보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들을 짚어줍니다.
한창 세계화를 부르짖던 시대가 기억납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할 수 없었던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식 시장경제 체제의 확산은 일과 노동의 존엄성을 약화시켰습니다. 국가 정체성과 충성심의 가치를 떨어뜨렸습니다. 우리는 40년 동안 이어진 신자유주의 세계화 세상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극심해진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정치는 시민들의 정당한 불만에서 비롯된 분노를 이용했고 해결하지도 못했습니다. 팬데믹 동안 양극화 현상을 뚜렷하게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에 큰 이슈가 되었던 트럼프 대통령 당선. 마이클 샌델은 그가 당선된 것 자체가 미국에서 사회적 유대감이 무너지고 민주주의의 조건이 훼손됐음을 가리키는 일종의 징후였다고 합니다.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에서는 갈등 없는 개방된 세상을 지향한 초국가적 프로젝트가 어떻게 공동의 정체성과 시민 참여를 배양하지 못한 채 대기업과 부유층에게만 유리하게 되었고 양극화가 심해졌는지 짚어줍니다. 민주주의 정치는 무력해졌고 공적 담론은 공허하게 느껴지는 세상입니다. 마이클 샌델은 민주주의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경제적 강자의 책임 회피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양극화를 누그러뜨리고 효과적인 민주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공적 삶을 재구축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시민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소비자의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경제 권력이 시민적 삶에 존재하는 결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이 실종된 상황입니다. 마이클 샌델은 우리는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민주적 시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20세기 후반부터 50년에 걸쳐 정립된 자유관이 변화하며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자유주의적 자유관이 공화주의적 자유관을 밀어내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미국의 혁명, 즉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은 시민적 덕목이 상실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부패를 잘라내고 공화주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시도한 혁명이었습니다.
이후 제조업에 대한 논쟁, 임금노동 논쟁 등 다양한 정치적 담론들을 거치며 국가 경제가 강화됩니다. 경제를 민주주의의 책임 아래 두려는 시도들은 경제 논쟁에서 시민적 노선이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불편한 공존이 이어졌습니다. 두 개념을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이 등장했지만 정의와 공동선에 대한 숙고는 뒷전이 되어갑니다.
새로운 버전의 자본주의는 세계화, 금융화,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물론이고 성장 및 분배 정의의 정치경제학에서도 멀어지고 있는 겁니다.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은 국가가 자국 경제 통제력을 잃게 만들고 금융위기를 촉발했고 노동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미국 정책은 금융이 주도했던 착취적 자본주의를 되살리는 데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점점 개인의 자치 권한 박탈 현상이 깊어졌고 이는 민주주의 대한 불만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금융 주도의 세계화가 낳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만든 결과물입니다. 그럼에도 성공에 대한 능력주의적 사고방식 담론만 펼쳤습니다.
개인은 자기 운명을 통제할 힘이 점점 줄어든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소속감, 참여의식도 낮아졌습니다.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는 정의란 무엇인가,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에 어떤 식으로든 대답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필요한 책입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큰 오늘날 왜 공공철학, 공동선을 외쳐야 하는지 들려주는 마이클 샌델은 지금은 사라져버린 미국의 기초 사조였던 시민의식을 되살리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제 정의와 공정에 이어 더 나은 삶을 위해 갖춰야 할 시민의식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시민이 된다는 것은 자기가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식을 고민한다는 것이고 또한 자기를 온전하게 인간적 존재로 만들어주는 미덕이 무엇인지 고민한다는 뜻이다." 책 속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