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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 만들기
이디스 워튼 지음, 최현지 옮김, 하성란 추천 / 엑스북스(xbooks) / 2023년 3월
평점 :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순수의 시대> 원작 소설가이자 이 작품으로 1921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디스 워튼이 남긴 소설 쓰기 책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제목이 무척 독특해서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원제는 The Writing of Fiction으로 나름 평범한 제목이더라고요. 번역판 제목이 정말 탁월하지요. 여기서 도롱뇽은 이야기의 '영혼'을 뜻합니다.
"벤베누토 첼리니는 어린 시절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난롯가에 앉아 있다가 둘 다 불 속에서 도롱뇽을 보았다고 자서전에 썼다. 그때도 그 순간의 광경은 이례적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곧장 아들의 귀를 감쌌고, 그로써 그는 자신이 본 것을 결코 잊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중략) 이는 또 다른 요점으로 이어진다. 보여 줄 도롱뇽이 없다면, 독자의 귀를 막아 봤자 소용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지핀 작은 불꽃의 중심부가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래서 다른 무언가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소리를 지르거나 흔들더라도 독자의 기억 속에 일화를 각인시킬 방법은 없다. 이야기를 말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근본적인 의미를 상징하는 존재가 바로 도롱뇽이다." - 책 속에서
이디스 워튼의 소설 쓰기 책은 일반적인 소설 작법서와 결이 다릅니다. 작가의 역량, 소설 쓰기의 본질을 파고듭니다. 단순히 기술을 논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실 읽는 데는 조금 힘에 부쳤습니다. 이 책은 무려 1925년에 출간되어 10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날의 소설 작법서는 빠르게 완벽하게 해내는 법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100년 전 이디스 워튼은 그야말로 걸작의 힘을 이야기합니다.
자연스럽게 이 책에는 19세기 문학사 대표작들과 위대한 소설가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고전문학이라 알려진 소설들을 파고들어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들려줍니다. 반면 불완전하고 미숙해 보이는 소설도 거침없이 지적합니다.
이디스 워튼은 발자크에게 큰 점수를 주고 있는데요. (알쓸인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발자크 에피소드를 재미나게 풀어내는 바람에 저도 발자크에 관심이 훅~! 이디스 워튼도 칭찬 일색이니 그의 작품들이 더 궁금해집니다) 생생히 살아있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그의 소설들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기법이니 의식의 흐름 기법이니 하는 소설의 기법에 대한 당시 유행 흐름도 만날 수 있습니다. 수준이 미미한 작가들은 경향에 따라가기 마련이고 지름길을 추구합니다. 그마저도 풍부한 창의성이 부족하다면 그 소설은 결국 묻히기 마련입니다.
독자의 주의를 끌고 뇌리에 남도록 만들기 위해선 그 순간을 결정적으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가로서의 역량이 중요합니다. 전방위적인 시각으로 성공적인 소설을 쓸 수 있는 역량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어떤 주제든 온전히 발현되려면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깊이 생각하며 창작자가 길러 온 모든 인상들과 감정들로 채워져야 한다." - 책 속에서
쉬운 성공에 물든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사려 깊은 조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독창성은 새로운 형식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 새로운 시각은 표현 대상을 충분히 오랫동안 바라봄으로써 작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달성할 수 있다고 합니다. 더불어 풍부한 지식과 경험으로 키워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거지?' 독자의 내적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소설이어야 합니다.
단편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단편소설은 소설의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공적인 이야기와 성공적인 소설은 같지 않다고 합니다. 소설엔 사람들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물론 몇몇 위대한 단편소설은 상황의 극적인 표현 덕에 생동감을 얻기도 했지만요.
여기서 초반에 언급한 도롱뇽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야기를 말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상징 도롱뇽. 단편소설은 그 궤적이 몹시 짧아 번개와 천둥이 거의 동시에 칩니다. 빈약하고 축약된 단편소설을 쓰지 않으려면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는데 이디스 워튼의 글을 읽으며 진짜 멋진 단편소설을 읽어보지 못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디스 워튼이 말하는 단편소설은 삶의 표면에 느슨하게 걸친 거미줄 대신, 인간 경험의 본질로 곧장 향하는 최적의 통로를 만들어 냅니다.
독창적이고 위대한 영국 단편소설을 자랑하기도 하는데요. 그러고 보면 으스스한 소설의 거장들이 무척 많습니다. 거장들은 공포 요소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누적되게 만든다는 걸 일깨웁니다. 다채로운 공격 대신 조용한 반복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요. 이디스 워튼은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극찬하는데요. 200페이지 내내 유령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초자연적 이야기 중 독보적인 책이라고 합니다.
이디스 워튼이 이 책을 쓴 시점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사망했고 곧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완결 편을 기다리던 시기였습니다. 그의 작품을 너무나도 사랑하는지 아예 한 파트를 프루스트만으로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첫 권이 나왔을 때 혁신가로 평가받은 프루스트는 그 사이 고전 반열에 오를 정도로 당시에도 핫한 작가였습니다. 혁명가처럼 떠오른 작가를 이디스 워튼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만나보세요.
왜 누구는 후대까지 남길 만큼 널리 읽히는 소설을 썼고, 왜 누구는 매력적이지 않은 소설을 써 묻히고 마는지 걸작이 되고 못 되고의 갈림길을 만날 수 있는 시간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발자크, 스탕달, 톨스토이, 제인 오스틴, 프루스트 등 위대한 거장들이 가졌던 비법을 파헤치고 있으니 고전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도 또 다른 깊은 맛을 선사하는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