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평등하다는 착각 - 왜 여성의 말에는 권위가 실리지 않는가?
메리 앤 시그하트 지음, 김진주 옮김 / 앵글북스 / 2023년 3월
평점 :

아일랜드 제8대 대통령 메리 매컬리스는 교황청에 방문했을 때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대통령을 그대로 지나치고 대통령의 남편에게 "대통령의 남편이 되느니 차라리 대통령이 되는 게 더 낫지 않나요?"라는 말을 건넵니다. 교황은 농담이라고 얼버무렸지만 남성 대통령이라면 듣지 않았을 농담입니다.
저자 메리 앤 시그하트가 기자 생활을 할 때의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기자라고 하니 상대방은 프리랜서 기자냐고 묻습니다. <더 타임스> 정치부 기자였던 저자는 자신이 남성이었다면 프리랜서라고 물었을지 반문하자 상대방은 겸연쩍어합니다.
<더 타임스> 편집자 및 칼럼리스트로 20년간 근무했고, 싱크탱크 의장을 비롯해 수많은 곳에서 연구원 및 교수, 이사로 활동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메리 앤 시그하트의 21세기 여성 차별 보고서 <평등하다는 착각>. 남녀 간의 권위 격차에 대해 다루는 책입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여성의 견해에 영향받기를 꺼려 하고, 여성이 권위를 행사하는 상황에 거부감을 갖는 현실입니다. 저자는 미투 운동 이후 일어나는 건 립 서비스 페미니즘이며, 무의식적 편향은 여전히 같다고 말합니다. 무의식적 편향은 성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조차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합니다.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평등하다는 착각>은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성공한, 권위 있는 여성 50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겪은 권위 격차 사례를 보여줍니다. 고위직 여성조차 그런 경험을 하는데, 나머지 여성들의 상황은 어떻겠나요. 저자는 연령, 인종, 계층을 불문하고 다양한 평범한 여성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1,000편이 넘는 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권위 격차를 만드는 수많은 요인들을 살펴봅니다. 책 후반부에서는 성별에 따른 권위 격차 문제의 해법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권위는 지식과 전문성의 결과로 얻는 영향력, 권력과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해당 분야의 귄위자이며 책임을 맡은 결과로 얻는 권한입니다. 대다수 남성은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의식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최고위직에 임명되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제 이런 주장은 시대에 뒤떨어진다고도 합니다. 여성이 특혜를 받아서 오히려 남성이 손해를 받았다고도 합니다.
과거로부터 지속되어온 편향이 여성의 눈에는 보이지만 남성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의 권위와 전문성이 과소평가되거나 의심받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자기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더 많은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때도, 연구실 관리직 지원서를 보낼 때도 권위 격차는 생깁니다. 유리천장을 깬 고위직 여성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성차별을 당합니다. 과학, 기술, 공학 분야에 용기를 내어 도전한 여성들은 여성을 밀어내는 사회적 힘에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성별 임금격차로 인해 남편이 받는 보수가 더 크기 때문에 임신하면 여성이 경력을 포기합니다. 직장을 떠난다는 이유로 고용 회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실제 직장을 떠나는 비율을 보면 남녀 간 차이는 없는데도 말입니다. 오히려 관리직은 남성이 이직하느라 떠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편향되게 행동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당하는 여성들은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다." - 책 속에서
권위 격차를 드러내는 모든 행위의 바탕에는 여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자리한다고 합니다. 여성이 말할 때면 주의를 덜 기울이고 말허리를 자릅니다. 더불어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편향을 보이는 행위 '내면화된 여성 혐오'에 대해서도 짚어줍니다. 여성도 남성만큼이나 고정관념에 빠지기 쉽다는 걸 일깨웁니다.
은밀한 편향 사례를 조목조목 짚어주는 <평등하다는 착각>. 지금의 세계는 권위 격차의 누적 효과로 만들어졌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그 반대도)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례도 등장하는데요. '빌어먹을 똑같은 연구'가 남성 연구자의 성과물이 되자 높이 평가받기도 했다고 고백합니다.
"남성은 자신의 무능함을 증명하기 전까지 유능하다고 평가받지만 여성은 자기 능력을 증명하기 전까지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아요." - 책 속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편향을 알아차리고 능동적으로 개선하려고 할 때만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데다가 여성작가의 책인데도 이 책을 선택한 남성들을 위한 파트도 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성평등이 왜 남성에게도 유익한지 알려줍니다.
<평등하다는 착각>은 개인, 배우자, 부모, 직장 동료, 고용주, 교사, 언론, 정부, 사회가 권위 격차를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몇 가지를 선택해 실천해 보고, 가끔 한 번씩 다시 들춰 보면서 스스로를 점검하고, 실천 항목을 점차 늘려보자고 응원합니다.
기성세대는 성장기에 습득했던 편향과 싸워야 하는 까닭에 권위 격차를 해소하기가 쉽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 세대는 편견에 시달리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바깥세상의 고정관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도와줄 수 있는 부모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남성과 여성은 배타적이지 않고 힘을 합칠 때 좋은 성과를 내고 서로를 보완하게 됩니다. 서로 다른 관점이 합쳐지면 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이 나온다고 합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권위 격차가 정말 존재하는지 의심되거나 존재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평등하다는 착각>을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