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 유럽에서 아시아 바이킹에서 소말리아 해적까지
피터 레어 지음, 홍우정 옮김 / 레드리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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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인질을 구출한 청해부대 아덴만 여명작전 전후 떠들썩했던 긴장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해적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히려 더 대담하게 공격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테러학 교수 피터 레어의 <해적>에서 왜 해적의 길로 접어드는지, 과거와 현대의 양상은 어떻게 다른지, 왜 여전히 지속되는지 해적의 생애주기를 시대에 따라 살펴봅니다.


해적행위의 역사를 1500년 이전의 중세시대, 17세기부터 20세기 초 유럽 해상강국 시대, 그리고 세계화 물결이 시작된 이후부터 오늘날 현대에 이르기까지 구분해 들려줍니다. 각 시대마다 해적이 되기로 결심하고, 해적으로 살다, 마침내 그만두게 되는 생애주기를 따라가는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펼쳐집니다.


<해적>에 등장하는 바다의 도적은 자기 맘대로 움직이는 해적과 합법적 권한을 부여받아 활동한 사략선 그리고 그 사이의 회색 지대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일부 해양 문화권에서는 해적이 용맹한 전사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바이킹처럼 말이죠. 십자군 원정처럼 종교가 해적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합니다. 해상 교역이 늘어나면서 경쟁자들의 배를 약탈해야 살아남기에 해적 친화적 환경이 조성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흑기를 걸어 올리는 순간 공포 전술과 같은 심리전으로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물론 전투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공격받은 배가 끝까지 싸우겠다고 작정하면 피 튀기는 백병전으로 전환될 수밖에요. 


바이킹만큼이나 왜구의 노략질도 명성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쓰시마섬을 거점 삼아 고려와 조선을 괴롭히며 남중국해까지 활동한 왜구에 대해서도 조명합니다. 이성계, 세종대왕도 등장합니다. 대규모 함대를 파견해 대마도로 보내 섬마저 점령했다고 말이죠. 이후 소강상태를 보이다가도 감시가 소홀해지면 다시 날뛰었지만요.


해적은 바다에서만 활동한 게 아니라 해안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내륙 도시들도 침략했다고 합니다. 바이킹과 왜구 역시 육지까지 진출해 살인과 약탈을 합니다.


해적은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큰 위험한 직업이었지만 떼돈을 벌지도 모른다는 희망 한 줌과 탐욕, 불안 외에도 영웅적 낭만주의나 모험심도 개입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하층민이 해적이 되었지만 하급 귀족, 신사 계급 등 알만한 이들도 해적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유럽 열강이 판치던 제국주의 시대에는 정치 판도에 따라 국익에 부합하면 자유분방한 외교 수단으로서 사략단을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식민지 약탈 사략단이 꾸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해적, 사략선을 활용한 소소한 이익이나 약탈물을 얻는 것보다 해상 무역에 의지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유럽 해상강국들은 세계를 무대로 제 몫을 차지하기 시작합니다. 점차 우월한 해군력을 가지게 되고 해적질은 옛이야기가 됩니다.


검은 수염으로 유명한 대해적 에드워드 티치는 2년간 해적으로 살다 죽었는데, 이처럼 해적 경력은 길지 않다고 합니다. 중국의 해적여왕 정일수와 해적왕 오석이는 약 10년 동안 활동했지만, 대체로 정직(?)한 시민으로 되돌아갔고 일부는 교전 중 사망하는 최후를 맞이합니다. 대부분 호시절의 절정에서 현명하게 해적 무대를 떠나 사면 받고 여생을 당당하게 보냈다고 합니다.






1991년 소말리아 정부가 붕괴하자 젊은 소말리아 어민들은 대거 해적으로 변신했습니다. 법질서가 사라지자 자신들의 앞바다를 지키기 위해 나섰기에 오히려 자경단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곧 외국 선박을 나포하고 선원들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어업보다 훨씬 더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경단은 해적단이 됩니다.


기니만에서 활동하는 악명 높은 나이지리아 해적도 비슷합니다. 세계화와 근대화의 수혜를 입지 못한 곳에서 생존을 위해 가난과 투쟁해야 하는 곳에서 해적이 양산됩니다. 오늘날 해적을 미화하는 풍조는 사라졌습니다. 정상적인 정부가 통치하는 곳이라면 해적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지도 않습니다. 해적을 감당하기 어려운 나라에서 해적행위가 성행합니다.


사람들이 해적을 위협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 때문에 벌어지는 참혹한 결과도 꽤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최악의 해적 출몰지인데도 많은 요트 여행자들이 간과합니다. 배에 아무리 현금과 귀중품이 없어도 요트와 탑승자 자체가 해적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탐나는 목표물이라고 합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이처럼 몸값협상용 사업모델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2010년에 초대형 유조선 삼호드림호가 무려 7개월간 납치되었고 950만 달러를 지급하고 석방된 사건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호화 요트와 화물선, 유조선을 납치해 많은 나라가 석방금을 내야 했습니다. 전성기 소말리아 해적은 해적 중에서도 최상위 소득자였다고 하는군요.


반면 나이지리아 해적은 선원들의 귀중품과 선박 금고의 현금을 노리고, 유조선의 정제유를 노리며 독보적인 폭력성을 보인다고 합니다. 선원들의 생존은 작전의 성공과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해적은 어떻게 퇴치해야 할까요. 역사적으로 해적은 자국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사면으로 구제하거나 끝없는 전쟁의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해적을 소탕하기 위해 유럽연합 및 각국에서 내놓은 해결책을 소개하며 영향력과 한계를 짚어줍니다. 현대에는 법의 심판대에 세워 정의를 구현할까요? 대체로 해적들을 값비싼 재판에 회부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유럽연합 법에 따르면 해적이 군함에 올라타는 순간 망명 신청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무장 해제 후 제 배에 태워 돌려보내고, 해적들은 군함이 사라지면 다시 범행을 시도하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게다가 불법 조업처럼 단속 의지가 없는 현대 국가들의 모습이 자리 잡고 있기도 했습니다.


중세 해적에서부터 현대 소말리아 해적에 이르기까지 해적의 모든 것을 담은 피터 레어의 <해적>. 해적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냥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불변의 법칙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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