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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로그 - 생존과 쾌락을 관장하는 놀라운 구멍, 항문 탐사기
이자벨 시몽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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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목소리를 낮추게 되거나 킬킬거리게 만드는 이중적인 위치를 가진 엉덩이골에 숨어있는 그것. <애널로그>의 주제는 항문입니다. 세상의 중심이 바로 항문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이자벨 시몽의 놀라운 탐구 여정을 따라가볼까요. 생물학적 기능, 질병처럼 의학 관점만이 아니라 인류학적으로 항문을 두루 살펴봅니다.
"항문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항문은 우리가 동물에 속하는 존재임을 증명해주면서도, 항문에 대한 수치심을 통해 우리를 동물과 구분지어주기 때문이다." - 책 속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배변을 하고, 누구나 배변을 위한 구멍을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항문이 없다면 나흘 이상 살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정상적인 신체기관인 항문을 두고 죄의식, 수치심을 느끼게 만든 건 언제부터일까요.
'지지, 그건 똥이야!'라는 꾸중을 듣는 배변 훈련에서 비롯됩니다. 민감한 항문기 시기가 자아 형성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짚어줍니다. 나에게 좋은 것이 바깥에서는 나쁜 것이 (엄마가 내던져버리는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는 가치의 뒤바뀜을 받아들일 때 두려워하지 않고 배설할 수 있는 자신감 있는 성인으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청결, 단정한 아이로 자라게 하는데 효과적인 유일한 방법으로 항문에 대한 혐오와 수치심을 주입하는 교육도 문제입니다. 탈선행위들은 멀리하게 될지언정 자신의 신체에서 항문을 경멸하게 됩니다.
흔히 알고 있는 치질, 치루부터 항문암까지 항문과 관련한 질병들에 대해서도 하나씩 짚어줍니다. 치루 환자들 100명을 실험하며 치루 수술 사망률이 0퍼센트가 되었을 때 수술을 받은 루이 14세의 에피소드에서는 놀랍습니다. 마취제 없이 수술받는 왕을 응원하기 위해 성가대원들이 "신이시여, 왕을 구하소서!" 노래를 불렀다는데, 이 노래가 영어로 번역되면서 인기를 얻자 영국의 국가가 되었다는 믿기 힘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명 항문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애널로그>에는 이보다 더한 믿지 못할 이야기들이 수두룩합니다. 구멍 안에서 찾아낸 놀랍도록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물건들 목록을 보면 뜨악하게 됩니다.
저자가 참고한 도서들도 각주로 확인할 때마다 경이롭습니다. <뒷구멍에 사로잡힌 물질주의>, <밤 끝으로의 여행>, <항문 쾌락과 건강>, <심술궂고 기지 넘치는 언행들에 관한 책>, <성격과 항문에로티즘(프로이트가 쓴!)>... 원초적인 그곳에 대한 탐구인 만큼 항문 성애에 대한 이야기도 깊숙하게 들어갑니다. '더는 알고 싶지 않아!' 싶을 만큼 자세하게 말이죠.
항문에 대한 금기는 종교가 개입하면서 본격화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손 생산 목적이 아닌 행위는 처벌하게 된 겁니다. 교회의 도덕적 권위가 개개인의 성생활까지 통제하게 된 시기입니다.
그전까지 느슨했던 규율은 준엄한 도덕규범에 밀려나고, 결국 동성애자는 사형에 처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사회바깥에서 하위문화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고, 호모, 게이, 퀴어 같은 부정적인 이름들을 부여받게 됩니다.
항문 예술 세계도 놀랍습니다. 20세기 프랑스에서는 방귀 공연예술가가 있었고, 살바도르 달리는 항문 데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피에로 만초는 예술가의 똥을 팔기도 했었죠. 각종 소설, 시 등 문학작품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항문 예술이 펼쳐집니다.
문학적 감수성과 품위 있는 농담이 진하게 배어있는 이자벨 시몽의 항문 예찬 <애널로그>. '활짝 열린 항문 정신'의 향연에 빠져들게 됩니다. 성별 범주를 무효화하고 상호 불가침과 자율성의 담보물이기도 한 항문. 부정적인 존재 방식 속에 긍정적인 부분이 유지되면서 양면성을 유지하는 놀라운 구멍, 항문 탐사기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