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근대인물 기행 - 한일 근대사 속살 이야기
박경민 지음 / 밥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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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두 나라가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한일 근대사를 풍부한 자료로 명확하게, 술술 읽히는 스토리텔링으로 재미있게 접근하는 역사책 <한일 근대인물 기행>. 일본이 흥하고 조선이 망한 진짜 이유를 알고 싶었다는 박경민 저자. 역사 전공자가 아님에도 그렇기에 오히려 역사적 편견 없이 학자적 태도로 사료와 원전에 충실하게 당시 시대 상황을 재현합니다. 무엇보다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전개한 서술 방식과 질문을 던지는 방식에 반했습니다.


<한일 근대인물 기행>은 1850년부터 55년간의 한일 양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강화도령 철종이 등극하고 을사조약 체결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때까지, 19세기 중후반 시기에 일본과 조선에서 활동한 인물들 39인(일본인 21명, 한국인 16명, 외국인 2명)의 이야기를 시기별로 비교해 보여줍니다. 단순 인물 소개를 넘어 왜 일본이 아시아의 신흥패권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는지, 왜 조선은 자주적 개항을 하지 못했는지 일본과 조선의 운명에 강력한 한방을 행사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도 한일 근대사의 빛과 어둠에 영향받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이해하게 됩니다.


1853년 미국 페리 제독 함대가 일본 에도만에 나타나 개항을 요구합니다. 개국파와 쇄국파로 나뉘어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이지만, 결국 그 결과는 메이지유신이었고 근대화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박경민 저자는 질문을 던집니다. 250년간 이어진 에도막부의 쇄국정책 속에서, 무신정권 일본은 왜 싸우지도 않고 개국 결정을 내렸을까요.


페리 함대가 나타난 1년 뒤 1854년에 일본이 서양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미일화친조약이 체결됩니다. 물론 불평등조약이지만, 이 과정이 훗날 조선과는 다릅니다. 일본은 네덜란드 상인과 무역을 이미 하고 있었고, 페리 함대가 왔을 때도 그들의 신기술에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서구문물과 기술에 호의적이었던 일본의 실용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를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조선으로 가볼까요. 당시 서양 오랑캐와의 수교와 통상은 상상조차 하지 않으며 청나라조차 한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심 경멸했던 조선인으로서는 서양인은 그야말로 짐승으로 생각했습니다. 국내 사정은 혼동의 도가니입니다. 안동 김씨 세도정치와 탐관오리의 병폐가 만연해 농민 봉기가 일어날 지경입니다. 이 시기에 농민들의 정신적 스승이 되어준 건 근대적 평등사상을 우리나라 역사 최초로 창안하고 유포한 혁명적 사상가 최제우의 동학이었습니다. 지난해 읽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삶을 다룬 역사소설 <석파란>이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아는 이야기들이 나오니 읽는 맛이 더 쏠쏠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 이외의 사상과 종교는 사학으로 규정해 모두 처단합니다. 이후 개항 여부가 국가적 이슈가 되었을 때 위정척사파 유학자들이 맹위를 떨쳐 조선이 근대화에 뒤처지는 큰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일본의 개혁 추진 상황을 보면 역사의 무대에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가운데 16세 소년 메이지 천황이 등극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메이지 시대 일어난 변혁의 정도와 속도는 어마어마해 이 시기에 행해진 일본의 근대화를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통틀어 메이지유신이라 합니다. 


일본에선 일본 근대정치사에 큰 영향을 발휘하며 개혁 주도세력의 운명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된 정한론 파동이라는 굵직한 사건이 있었고, 그 사이 조선은 일본의 동향을 모른 채 대원군의 권력 유지와 고종의 친정 개시 여부 등 권력 다툼에 집중해 있었습니다. 여기서 또 저자는 관심 가져야 할 포인트를 짚어주는데요. 1852년생 동갑내기인 메이지와 고종. 두 소년이 각자 어떤 통치력을 발휘하는지 살펴보게 하는 저자의 관점이 흥미진진합니다. 





일본은 근대국가의 기본 틀을 형성하고 내치에 집중하며 국력 배양에 힘씁니다. 내각제의 일인자가 된 이토 히로부미의 주도로 동아시아에서 근대적인 헌법을 가진 최초의 입헌국가가 됩니다. 저자는 일본인의 정신세계와 일본 사회 곳곳에 잔재로 남아있는 제국헌법을 살펴봅니다. 천황 중심의 군국주의로 치달릴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어 후일 원폭 투하라는 인류 역사의 비극을 잉태하게 된 원인이 되었음을 짚어줍니다.


안중근의 마지막 1년을 다룬 뮤지컬과 영화 <영웅> 덕분에 다시 한번 이토 히로부미의 이름을 듣게 되었지만 사실 그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일 근대인물 기행>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에 끼친 영향력을 이해하게 됩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을 거치는 사이 청의 원세개(위안스카이)와 러시아의 베베르만, 두 외국인이 조선에서 외교적 결투를 벌이며 오히려 조선의 인물은 두드러지지 않은 시기도 있었습니다. 자주적 개혁의 기회를 놓친 결정적 장면들을 하나하나씩 짚어가다 보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때 박경민 저자는 조선 멸망의 인과관계를 왜곡하거나 한계성을 운운하지 않고, 잘못된 역사로 들어서게 한 지배층의 대처방안에 주목합니다.


일, 청, 러의 관계 속에서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된 조선.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날 주요 인물들의 행적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은 당시의 상황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기분입니다. 기회가 분명 있었음에도 놓쳐버린 조선, 근대 청년기로 탈바꿈한 일본. 한일 양국의 극적인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한일 근대인물 기행>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한일합방 이후 광복까지의 인물 이야기도 저자의 스토리텔링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이유로 흑역사를 파헤친 박경민 저자. 선악 이분법으로 왜곡하거나 국뽕으로 미화하는 대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야 비슷한 상황에서 또다시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을 테니까요. 역사 '그대로 보기'와 '제대로 보기'의 중요성을 짚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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