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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그들의 정치 -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제이슨 스탠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솔출판사 / 2022년 12월
평점 :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에 웬 파시즘 이야기일까 싶었는데 오늘날의 불안한 정치를 설명하는 키워드야말로 파시스트 정치라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미국 대표 사회철학자 제이슨 스탠리가 쓴 <우리와 그들의 정치>. 2018년 트럼프 재임 시절에 출간한 책으로, 자유민주주의 미국이 파시스트 정치로 물들고 있음을 조목조목 짚어내며 베스트셀러에 오릅니다.
파시즘은 권위주의식 지도자의 인격이 국가를 대표하는 민족, 종교, 문화의 초국가주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권력을 얻기 위한 메커니즘으로서의 파시스트 전술을 쓰는 이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벌어지는 일을 들려주는 <우리와 그들의 정치>.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반백인 난민 이민 금지 정책처럼 파시스트 정책들이 극을 달했고, 소수집단을 비인간화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오늘날 미국,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 등 현대 정치판에서 나타난 파시스트 정치 전략 10가지를 사례와 함께 짚어줍니다.
파시스트 정치의 핵심은 신화적 과거를 만들어내는 데 있습니다.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감정을 이용합니다. 그 안에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성 역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지도자는 가부장제 가족의 아버지와 유사합니다. 과거의 고결한 도덕적 관행을 정치적 이들을 위한 무기로 삼아 거짓 서사를 만들어 냅니다.
명백히 문제가 있는 정치적 목표를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상으로 가려서 숨기는 것 또한 전략 중 하나입니다. 고결한 언어로 가리는 프로파간다는 이상을 왜곡시킵니다. 민주주의 자유를 이용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며 오용하는 건 예삿일입니다.
순종적인 시민으로 만들고자 공적 담론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교육에도 손을 댑니다. 대학을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의 온상이라며 비난합니다. 파시스트 정치의 명함과도 같은 음모론도 비일비재합니다. 현실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실제 사건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는 음모론, 가짜뉴스로 현실을 왜곡합니다. 위계를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남성을 여성보다, 파시스트의 선택된 민족의 구성원을 다른 집단들보다 우선시합니다.
'우리'가 오히려 빼앗겼다 식의 피해자의식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지배적 지위를 상실하면 억울한 피해자의식으로 무장하는 겁니다. 법질서에서도 시민을 대놓고 두 계급으로 나눕니다. 천성적으로 합법적인 선택받은 민족, 본래 무법하고 선택받지 못하는 민족으로 말이죠. 여성, 비백인, 동성애자, 이민자 등 소수자들은 '그들'이 되었습니다. 집단 간 언어 편향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같은 행동을 해도 그들은 범죄자이고 우리는 실수인 겁니다.
"우리가 '우리'의 하나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묘사할 때에는, 우리가 '그들'의 하나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묘사할 때와는 상당히 다르게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 우리와 그들의 정치
전통적인 남성 역할이 경제적 상황으로 위협을 받고 있을 때 특히 성적 불안 정치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민자 집단을 강간과 연결짓는 프로파간다의 공세 앞에서 논리적 사고력은 상실합니다. 트랜스젠더는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위협으로, 임신 중절은 남성의 통제에 대한 위협으로 대합니다. 난민 서사가 피시스트의 강령하에서는 테러와 위험의 기원 서사로 바뀝니다.
도시는 경멸스러운 소수집단들로 가득 찬 곳이라며 반도시 수사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악과 타락을 상징하는 두 도시 소돔과 고모라처럼 말이죠. 위기, 궁핍의 시기에 국가는 선택된 민족 구성원들을 위한 지원을 마련하지만 이 역시 '그들'이 아닌 '우리'를 위한 지원일뿐입니다. '그들'은 각자도생해야 합니다. 더불어 '근면'대 '게으름'의 이분법을 우리와 그들에게 적용합니다. 아우슈비츠 출입문에 적힌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하리라' 문구는 유대인들은 게으르고 부패한 범죄자들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열 가지 파시스트 정치 전략은 다원주의와 관용을 거부하며 철저히 우리 대 그들로 갈라치기합니다. 파시스트라는 단어 때문에 집단학살, 인종청소와 같은 과거의 역사 사례를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지금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더 충격적입니다. 지금 정치가 바로 그 파시스트 정치라니! 히틀러처럼 세계 지배를 위해 사용하지 않을 뿐, 결국 파시스트 전술을 위선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민주적 규범들로부터의 자유라는 미끼로 대중을 유혹하고, 그 안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건 혐오입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에는 어느 정도 결함이 있고 불일치에서 생기는 긴장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파시즘은 그걸 제거함으로써 문제 해결하고자 약속을 합니다. 우리와 그들로 나눠서 말이죠. 오늘날 권위주의적 지도자, 정치 집단에서 발견되는 파시스트 정치 전략을 짚어준 <우리와 그들의 정치>. 인간적 유대감을 유지하고 파시즘 신화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