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5
케이시 지음 / 플랜비 / 2022년 10월
평점 :
절판




한국 영화계가 먼저 알아본 스토리텔러 케이시 작가. 전자책으로 선보인 데뷔작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네 번의 노크>로 영화화 판권 계약을 맺은 이력 덕분에 필명으로 활동하는 케이시 작가가 더 궁금해졌어요. 다음 스릴러 소설이 또 나올 예정이라는데 그 사이 재미있는 작업을 하셨더라고요. 


기존의 스릴러와 분위기가 확 다른, 그리고 기존 K 판타지와는 결이 다른 픽사 애니메이션을 텍스트로 읽는 듯한 느낌을 안겨준 판타지 소설 <0125>입니다. 읽는 내내 토이스토리, 인사이드 아웃, 코코 같은 영상미가 떠오르며 너무나도 신나는 시간이었습니다. ​​


처음엔 알쏭달쏭 한 제목에 무슨 내용일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더라고요. 10,000번의 손이 닿은 돈에게 영혼이 생기며 여행하는 이야기 <0125>. 숫자 0, 1, 2, 5는 돈을 구성하는 숫자를 일컫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이 한국이 아니라 1달러, 2달러, 20달러, 50달러, 1센트, 5센트, 25센트... 가 있는 미국이거든요. ​


할머니가 아이에게 준 용돈 1달러에게 영혼이 탄생되는 순간으로 시작합니다. 아기 냄새 가득한 지갑에 머무는 1달러 포티. 그곳 동전 칸에는 먼저 영혼이 생겨 눈을 뜬 동전 팔콘이 있습니다. 언제 헤어질지 모르지만 지갑 속에서 우정을 나누는 둘의 대화를 보면 꽤나 철학적입니다. 팔콘은 이 세상을 인지한 포티에게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을 알려줍니다.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려주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어쨌든 돈과 관련돼 있다는 걸 들려줍니다. 게다가 지갑을 열면 꺼내지 못하게 깊숙한 곳으로 잘 숨는 노하우까지!​​


"수많은 손을 거치며 나는 다양하게 쓰였다. 누군가의 커피가 되고 술이 되고 때로는 우울증 약이 되고 수도 요금이 되기도 했다. 나쁜 어른들에게 따라간 적도 있다. 잠깐이지만 해외로 다녀온 기억도 떠올랐다." - 0125 


계속 이동하는 운명을 가진 돈. 포티는 아이의 곁에 있고 싶지만 결국 마트에서 캐시박스로 그리고 트럭 운전사에게 가게 됩니다. 첫인상이 썩 내키지 않아 실망했지만, 사랑으로 가득한 그들 가족의 모습을 보며 겉모습만으로 판단해버린 섣부른 감정을 반성하기도 합니다. 그 집에서도 숨어 있는 동전을 만납니다. 부부가 신혼여행으로 이탈리아를 갔을 때 딸려 온 10센트 유로입니다. ​​뱃속 아이를 잃고 상심한 부부를 회복시키고 싶은 둘은 머리를 맞대어 고민도 해봅니다. 옆구리를 쿡 찔러 줄 넛지 이론이 등장하기도 하고, 다양한 행동 심리학 이론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한곳에 가만히 숨어 머무는 것보다 새로운 문을 여는 포티. 안전한 일상보다 위험이 있더라도 더 큰 기회도 가득한 여행을 택합니다. 포티는 여러 사람을 거치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도움을 주길 희망합니다. 아이에게서 부부네로, 커플을 거치며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포티. 이번엔 일부러 바닥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요? ​​





새로운 인연은 번듯한 모습의 신사입니다. 성공한 부자인 그는 청년들에게 강연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정작 그는 아들과 관계가 좋지 못했습니다. 밖에서는 꿈과 도전을 이야기하면서 음악가의 길을 가고자 하는 아들에게는 폭군 지배자처럼 행동하지요. 한편 버스킹을 하며 가수의 꿈을 키우는 가난한 소녀도 있습니다. 그 집에는 영혼이 깨어 있는 물건이 꽤 많습니다. 더 멀고 좁은 곳으로 이사해야 하는 소녀의 현실은 갑갑하기만 합니다. 


"꿈을 꾸는 대가가 이렇게 큰 것일까. 꿈을 꾸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컸다." - 0125 


포티 역시 과거의 기억에 머무는 게 아니라 일상의 새로운 문을 열었듯, 이들에게도 인연의 선을 거미줄처럼 엮어 소년과 소녀를 안전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스스로 가치 없다고 여기고 있던 1센트 동전이 희귀 동전이 되는 것처럼 가치는 스스로 정하는 거라는 걸 포티는 여러 사람들을 겪으며 잘 알고 있으니까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어도 "기적은 자성을 띠고 있어 꿈을 꾸는 사람에게만 붙는다."는 말처럼 50% 확률에 의지를 더 하면 51%가 된다는 걸 펼쳐 보입니다. 매일 같은 일상의 연속 같아 보여도 지금 행동이 우리를 결정하듯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꿈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막막한 청춘에게 위로와 용기를 안겨주는 책 <0125>. 포티가 만난 사람들의 인연의 끈이 끈끈하게 엮일 땐 감동이 물밀듯 밀려옵니다. 저마다의 고민과 상처를 가진 이들이 그럼에도 용기 내어 살아갈 힘을 얻어 가는 감동 가득한 여정이 펼쳐집니다. 


힐링 소설 찾으시는 분들에게 강추! 애니메이션 제작비 상 퀄리티 제대로 뽑아내려면 영화화되는 건 기대를 접어야 할 것 같아서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0125이니 픽사에서 코코 급 정도로 딱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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