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에는 체력이 녹아있어 - 포기하지 못할 꿈의 기록들
한유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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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폭력 활동가 한유리 에세이 <눈물에는 체력이 녹아 있어>. 언론에 기고했던 글과 웹 매거진, 블로그를 통해 공개했던 글 그리고 비공개 에세이가 더해진 책입니다. 


저임금 노동 빈곤 여성의 녹록지 않은 삶을 살면서 그럼에도 글 쓰는 일만은 놓지 못하는 기록 노동자가 쓴 이 시대의 웃지 못할 농담이 스며든 <눈물에는 체력이 녹아 있어>. 이 시대 청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서빙, 주방 보조 알바, 콜센터, 공장, 과외, 편의점, 백화점... 고등학생 시절부터 열심히 어디에서든 일을 해왔지만 "나는 엄청 열심히, 많이 일하는데, 십 대 때부터 일했는데, 왠지 자꾸 돈이 없다."는 말은 남일 같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추가 수입이 생기면 딱 그만큼의 지출이 생긴다는 말에도 격하게 끄덕이게 됩니다. 


만성 우울증과 불면증을 안고 살아온 나날들. 주기적으로 휴식과 입원을 권유하는 병원. 하지만 어떻게 쉬어야 할지 여전히 의문입니다. 가족이 없고 주거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 빈곤 여성에게는 편히 쉴 방법조차 없습니다. 일을 쉬면 당장의 생존이 위협받습니다. 괜찮다는 의지만으로 현실을 살아가야 하고, 아프다는 걸 들키지 않아야 합니다. 병원에선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는데 병원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스트레스입니다. 


일을 쉬지 못하는 이유에는 얼떨결에 맡아 오랜 시간 함께한 반려동물 기니피그도 한몫합니다. 티라미수와 인절미라는 이름의 기니피그들을 수입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돌보다 보니, 남은 기력을 샅샅이 긁어모아 사랑하는 마음을 만들 수밖에 없는 돌봄의 의미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동물권 활동가들의 이야기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부모보다 빈곤한 세대라지만 그 안에서도 가장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청년의 한탄을 알아달라고 하진 않습니다. 그보다는 여성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춥니다. 대대적인 이슈가 될 만큼의 사건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여성이기에 일자리에서 노출되는 다양한 성폭력의 일상화를 들려줍니다. '모기에 물려 가려운 수준의 꾸준하고도 은은한 괴로움'이라는 표현이 공감됩니다. 


어느 장소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허용 가능한 암묵적인 룰과 제도적으로 벌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미묘한 차이를 꼬집기도 합니다. 사무실에서 했다간 큰일 날 일을 토킹바에서는 슬쩍해봐도 되는 정도의 여자로 묶이는 것처럼요. 어디서건 성적 대상화 당하는 본질은 똑같았습니다. 


"울고 싶은 순간에는 상상 속에서만 조금 울었다. 눈물에도 체력이 녹아 있어 한 방울이라도 몸 밖으로 내보내면 결국 나만 힘들다." - 책 속에서


장애인권운동가 김형수 님과의 인터뷰도 큰 울림을 안겨줍니다. 이념적으로 갑론을박할 문제, 운동의 관점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관점에서 일상화된 활동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페미니즘 운동에 뛰어들고 디지털 성폭력에 맞서 싸우고, 여성 노동자의 이슈에 뛰어드는 등 꾸준한 활동을 해온 유리 작가. 말하거나 소리 지르거나 발버둥 쳐도 어차피 안 된다는 것에 처절한 자괴감도 느끼지만,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못합니다. 포기할 수 없습니다. 무지해서 가능한 무시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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