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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의 밤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이은주 옮김 / 푸른숲 / 2022년 9월
평점 :
미치오 가쿠의 초공간과 유명한 사고실험인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통해 설명하는 양자역학의 다세계.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이 더해져 이토록 매력적인 소설로 탄생했습니다.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블레이크 크라우치의 SF 스릴러 소설 <30일의 밤>. 애플TV에서 조엘 에저튼 주연으로 드라마 제작 확정된 원작 소설입니다. 오랜만에 SF 소재에다가 액션 스릴러가 가미된 흥미진진한 흐름의 소설을 만나서 어깨춤이 절로 날 지경이에요.
목요일 밤은 제이슨이 아내와 아들과 함께 하는 가족의 밤입니다. 15년 전 아내 다니엘라는 시카고 미술계 유망주였고, 제이슨은 연구자로서의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이 궤도를 이탈하게 된 건 아이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바람에 미술계와 과학계가 손해를 본 셈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친구들이 그 분야에서 잘 나갈 때면 씁쓸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지금의 삶을 사랑합니다.
제이슨이 잠시 외출한 목요일 밤, 이 삶은 산산이 부서집니다. 괴한으로부터 납치를 당한 제이슨. 이것저것 이상한 질문을 하는 괴한에게 약물을 주사 맞고 정신을 잃게 됩니다. 잠시 뒤 이상한 장소에서 깨어난 제이슨은 누군가로부터 대단히 영웅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귀환한 것처럼 환영을 받습니다. 무려 14개월 만에 돌아왔다나요.
미묘하게 낯선 세계. 직업, 결혼... 모든 것이 달라져 있습니다. 아내 다니엘라와는 15년 전 헤어진 상황이었고 자신은 어떤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상태였습니다.
제이슨이 깨어난 곳은 바로 또 다른 세계의 제이슨이 (제이슨2라고 부릅니다) 살던 세계였습니다. 제이슨을 납치했던 괴한이 바로 제이슨2였던 겁니다. 제이슨2는 제이슨의 삶을 빼앗고 이곳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 우리가 내릴 수도 있는 모든 선택이 새로운 세계로 분기하며 그 다른 현실들도 존재한다는 것, 다중우주론을 바탕으로 쓰인 <30일의 밤>. 닥터 스트레인지의 판타지적인 분위기나 테넷의 시간 역전보다 오히려 이쪽이 훨씬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이슨2는 과학자로서 연구를 이어나간 다른 버전의 제이슨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만든 건 시공간상으로 동일한 지점의 다른 현실들과 연결해 주는 장치입니다. 제이슨2는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집착했고, 결국 이런 일을 벌인 겁니다.
아쉽게도 제이슨2의 장치는 랜덤템이었습니다. 그가 원하는 세계를 상상하면 최대한 그 세계로 연결되지만 자신이 어느 제이슨의 세계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겁니다.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 선택의 결과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다른 버전의 제이슨 세계는 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원래 세계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계속된 실패 속에서 제이슨에게 남은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가 이런 시도를 하면서 그 시점에서부터의 또 다른 제이슨들이 계속 생성되고 있다는 겁니다.
드라마가 시즌제로 계속 이어진다면 제이슨이 들르는 다양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만으로도 풍성한 스토리가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너무나 많은 버전의 나를 상상해 봅니다. 어떤 버전이든 그 속에서 나는 분명 후회를 할 겁니다. 삶은 불완전하니까요. 하지만 그 삶에서 대체 불가능한 무언가는 분명 있을 겁니다. 그것이 그 세계의 나를 지탱해 주고 나의 정체성을 굳건히 해주지 않을까요.
후회를 없앨 수 없는 장치를 만들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을 빼앗는 것으로 선택한 제이슨2. 당신은 이런 물건이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선택을 후회하며 사느냐, 감수하고 사느냐를 다양한 버전의 캐릭터로 적나라하게 보여준 <30일의 밤>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