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한 방울 - 이어령의 마지막 노트 2019~2022
이어령 지음 / 김영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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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영면에 들기 한 달 전인 1월까지 노트에 손수 쓴 육필원고를 정리한 책 이어령의 마지막 노트 <눈물 한 방울>. 탁월한 통찰력으로 시대의 지성이라 불린 그만의 사유와 영감의 흔적이 손글씨와 그림으로 가득 남아 있어 뭉클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간암 판정 후 항암 치료를 거부한 채 약속된 출간 프로젝트에 전념했던 이어령 저자는 그 와중에도 내면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눈물 한 방울>은 죽음을 앞에 두고 써 내려간 인간 이어령의 내밀한 속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의 유일한 자서전이자 회고록과도 같은 책입니다. 


마지막까지 쓰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던 이어령 선생님. 일찍이 컴퓨터로 글을 쓰셨기 때문에 이 책의 의미가 더 깊습니다. 2019년 11월부터 병상에서 노트에 쓴 시와 수필 110편, 그림이 기록된 육필원고가 고스란히 책 속에 들어있습니다. 40년 만에 병상에서 손글씨를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 글씨를 배우는 초딩 글씨와 같다며 가나다라를 노트 한편에 조그맣게 적어내려간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2021년 이후부터는 나날이 지날수록 필체에 담긴 힘의 쇠락마저도 느낄 수 있어 그의 고통이 전달되는듯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평생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이라는 뜻깊은 개념으로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 이어령 저자. 이제 자신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눈물 한 방울'이라고 하셨습니다.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짐승과 달리 인간은 정서적 눈물을 흘릴 수 있고, 인공지능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박애야말로 우리 세상을 위한 희망의 씨앗과도 같다고 합니다. 그의 마지막 기록은 나와 다른 이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관용의 눈물 한 방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병상에서도 끊임없이 사유하는 그의 노트는 우리에게 창조적 영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귀여울 정도로 순수한 호기심이 아직도 반짝이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유의 여정을 속속들이 만나는 시간입니다. 하얀 빈 노트에 쓰기를 머뭇거리는 마음도 슬쩍 내비칩니다. 겁먹지 말고 아무렇게나 쓰자며, 뒷간 벽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써보자며 "날짜도 적지 마!!!"라고 흘린 글도 있습니다. 갈릴레오도 셰익스피어도 되지 못한 한계를 슬며시 토로하면서 기력이 있을 때까지 그의 우물 파기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승자가 쓴 역사보다 한 번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패자의 이야기에도 궁금해하고, 책을 읽다가 만난 문구에 재미난 발상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라고 하면서도 책을 주문한다. 읽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런 힘도 이제 남아 있지 않다. 몇 구절 서평 속에 나와 있는 것이 궁금해서, 호기심을 참지 못해서다. 내가 마지막 주문할 책은 과연 어떤 것일까? 무엇이 또 알고 싶고 궁금한 것이 있어 또 책을 주문한 걸까. 아마 그 책이 배달되기 전에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 p67 배달되지 않은 책에 대하여 


죽음이 점점 다가올 즈음엔 한 호흡이라도 쉴 수 있을 때까지 숨 쉬고 싶고, 한 마디 말이라도 할 수 있을 때까지 말하고 싶고, 한 획이라도 글씨를 쓸 수 있을 때까지 글을 쓰고 싶어 했던 선생님의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 있습니다. 2021년 12월 30일의 글에는 "이제 떠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끝을 기약하는 목소리가 담겨있었습니다. 눈물 한 방울을 이야기하던 마지막 우물 파기는 참 힘들었다며 더 이상 기록하지 못할 것 같다는 그의 아픔이 담겨 있어 먹먹해집니다. 


2022년 1월 23일 새벽 마지막 글을 한 자 한 자 남기며 이어령 선생님의 노트는 끝이 났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큽니다. 지상에서 가장 힘 있는 작은 눈물 한 방울의 흔적을 적어 내려간 이어령의 마지막 노트 <눈물 한 방울>. 분야를 가리지 않고 160여 권의 저작을 남긴 그의 마지막 사유가 안기는 감동을 만나보세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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